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장)
정당은 선거에서 승리할 때보다 패배했을 때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승리는 기존 노선의 정당성을 확인하지만, 패배는 정당의 존재 이유와 미래 전략을 근본적으로 다시 묻는다. 지방선거 패배 이후 국민의힘에서 장동혁 지도부 사퇴론, 해당 행위 의원 징계론, 한동훈 전 대표 복당론이 동시에 분출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겉으로는 당권을 둘러싼 갈등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보수정당이 어떤 방식으로 혁신하고 재건할 것인가를 둘러싼 정체성 경쟁이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단순한 승패가 아니다. 국민이 정치권에 보내는 가장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다. 선거 패배는 유권자가 지도부의 리더십과 전략, 정당 운영 방식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는 뜻이다. 따라서 지도부가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은 희생양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책임정치의 출발점이다. 막스 베버는 정치인의 덕목을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로 구분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결정이 초래한 결과까지 감당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라는 뜻이다.
선거에서 패배하고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정당은 국민에게 "우리는 패배해도 변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내게 된다. 이는 정당 신뢰를 더욱 약화시키는 길이다. 한국갤럽 조사(7월 7~9일) 결과, 국민의힘에 대해 69%가 '호감 가지 않는다'고 응답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새뮤얼 헌팅턴 역시 강한 정당은 특정 지도자의 카리스마가 아니라 제도와 절차가 지배하는 조직이라고 강조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책임과 지도부 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 정당은 제도화되지만, 책임이 실종되면 조직은 계파와 개인의 이해관계에 종속된다. 보수 재건의 첫걸음이 책임정치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책임만으로는 정당을 다시 세울 수 없다. 책임 이후에는 통합이 따라야 한다. 이 지점에서 한동훈 전 대표의 복당 문제가 제기된다. 복당은 특정 정치인의 명예 회복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보수 진영 전체를 하나의 정치적 공동체로 재구성하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고 한동훈 전 대표의 복당이 자동적으로 보수 재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복당은 보수 재건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정당은 사람을 바꾼다고 혁신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바꾸고 문화를 바꾸며 국민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할 때 비로소 혁신된다. 피터 메어는 정당이 사회와의 연결을 잃고 내부 권력투쟁에 몰두하는 순간 유권자는 정당을 떠난다고 분석했다.
오늘날 국민이 관심을 두는 것은 어느 계파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누가 자신의 삶을 바꿀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느냐다. 정당이 인물과 계파에만 매달릴수록 국민은 정치 자체에 등을 돌릴 가능성이 커진다. 조지 마커스의 감정정치 이론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선거 패배는 지지층에게 불안과 좌절을 안겨주지만, 그 불안은 동시에 기존 전략을 재검토하고 새로운 길을 찾게 만드는 정치적 자산이 될 수도 있다. 지도부가 그 에너지를 미래 비전으로 전환하지 못하면 불안은 분노로, 분노는 분열로 이어질 뿐이다. 결국 보수 재건은 지지층의 분노를 키우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의 불안을 희망으로 바꾸는 정치여야 한다.
따라서 보수 재건은 다섯 가지 과제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첫째,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정치를 확립해야 한다. 둘째, 계파를 넘어 조직을 통합해야 한다. 셋째, 공천과 당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넷째, 수도권과 청년세대가 공감할 정책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 다섯째, 미래를 향한 새로운 가치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없다. 결국 장동혁 지도부의 정치적 책임과 한동훈 전 대표의 복당은 서로 배척해야 할 선택지가 아니다. 책임은 혁신의 출발점이고, 통합은 혁신을 완성하기 위한 과정이다. 책임 없는 통합은 원칙을 잃은 타협에 불과하고, 통합 없는 책임은 끝없는 보복과 분열만 남긴다. 국민은 이미 선거를 통해 답을 내렸다.
보수 재건은 한 사람의 복귀로 완성되지도, 한 지도부의 퇴진만으로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국민이 다시 집권을 맡길 수 있는 대안 정당으로 거듭나는 것이 보수의 진정한 목표다. 사람을 바꾸는 정치가 아니라 정당을 바꾸는 정치, 권력을 지키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정치가 시작될 때 비로소 보수 재건은 현실이 된다. 선거 패배가 국민의힘에게 던진 가장 무거운 명령은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