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저를 키워준 고향입니다. 학창 시절을 보낸 후 검사 시절을 마치고 정치에 뛰어들면서도 제 마음은 내내 대구를 향해 있었습니다 (…) 지난 20대 총선 출마까지 무려 7차례나 고향 대구정치를 꿈꿔 왔습니다"
"대구는 저의 정치적 둥지입니다. 저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2년 전 갈 곳 잃은 저를 받아주신 곳이 바로 대구였습니다. 경남 밀양에서 밀려나고 양산에서 컷오프를 당하며 실의에 빠져 낙담하고 있을 때, 제 손을 잡아주신 분들이 바로 대구 고향분들입니다"-〈2022년 3월 31일 대구 수성못 상화동산 대구시장 출마선언에서〉
"최근 호남에서 홍준표를 압도적으로 지지해주고 있습니다. '호남 사위'인 제가 대통령이 되면 진정한 영호남 화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2021년 10월 11일 국민의힘 대선후보 본경선 광주전남전북 합동토론회에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정부의 호남 반도체 단지 추진 방향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연일 밝히면서 홍 전 시장의 '정치적 고향'인 TK민심이 들끓고 있다. 대구 국회의원·시장 직을 잇달아 지낸 인사가 반도체 산업 투자 유치로 반등의 기회를 꾀하던 지역 상황을 등한시한 발언을 쏟아내는 게 부적절하다는 비판이다.
반면 홍 전 시장은 호남 반도체 투자가 국토 균형발전 차원에서 필요하고, 대구 산업 부흥을 위해 충분히 노력했음에도 지역 정가가 본인을 돕지 않았다는 취지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문제는 홍 전 시장의 이 같은 발언에 영호남 지역 간 반목만 더욱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난 TK에 기름 부은 洪…"지금 남말하나" 정치권 '부글부글'
홍 전 시장은 지난달 28일 페이스북에서 "호남에 입지 조건만 된다면 반도체 단지가 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부의 호남 반도체 단지 추진 방향에 사실상 동의한다는 입장을 낸 것이다.
이에 대해 홍 전 시장은 "정략적인 조치가 아니라 국토균형 발전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홍 전 시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이래 영남은 창원을 중심으로 중공업이 자리 잡았고, 울산을 중심으로 자동차·조선·석유화학으로 우리나라를 견인하는 공업지대로 자리 잡았고, 부산은 수출주도형 산업효과로 물류도시로 우뚝섰다"며 "다만 대구만 섬유산업이 쇠퇴하면서 지역내총생산(GRDP)이 30년째 꼴찌일 뿐"이라고 말했다.
또 "80년대 들어와서 경기도, 충청도를 중심으로 반도체·전자 산업 등이 자리 잡았는데 유독 호남만 별다른 산업 없이 농업 중심도시로 남아 있다"라고 설명했다.
29일 정부의 투자 발표에서 '영남권 소외'가 현실화하자 TK 지역 정가는 발칵 뒤집혔다. 반도체 '소부장' 산업 유치를 넘어 삼성전자·하이닉스 등 대기업의 생산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던 지역 미래 먹거리 구상이 큰 타격을 입은 탓이다.
지역 정치권이 "소극적 대응으로 반등의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에 휩싸인 가운데, 연이은 홍 전 시장의 돌발 발언은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형국이었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홍 전 시장을 향한 힐난이 날아들었다.
대구 북구를 지역구로 둔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홍 전 시장은 대구 경제 침체를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며 "대구 경제의 현 상황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할 사람이 지역 산업 유치의 기회마저 놓칠 수 있는 상황을 두둔하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직격했다.
우 의원은 "아무리 이재명 대통령에게 잘 보이고 싶다고 해도, 전직 대구시장이라면 최소한 양심과 책임감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다.
우 의원은 지난 2일 페이스북에 "이번 국가사업 배제는 지역 정치권의 정보력 부족과 선제적 대응 실패 역시 분명한 원인"이라며 "그 중심에는 기업과, 지역민들과의 소통을 스스로 차단해 온 전 대구시장의 고립적 리더십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구시장을 마치며 '서울시민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던 홍 전 시장이 이제는 '대구가 배제된 것은 유감'이라고 무책임하게 한마디 하는 게 분노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洪 "감히 나를 비난하나…대구 국회의원들, 한 게 없다" 작심 비판
홍 전 시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향한 지역 정치권의 비판에 대해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자리만 지키는 지명직 국회의원 따위가 나를 비난할 자격이 있느냐"고 응수했다.
홍 전 시장은 29일 페이스북에서 대구시장 재임 시절 산업 유치 성과를 열거했다.
홍 전 시장은 "내가 대구시장 3년 하는 동안 5대 신산업 유치 육성에 전력을 다했다"며 "그 결과 과거 10년동안의 투자유치보다 2배 반을 더 했고, 기업도 40여개 유치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첨단산업 유치를 위해 신공항 추진과 군위 SMR유치, 달성 제2 국가산단, 로봇테스트필드, AI데이터센터, UAM사업추진등 신산업을 유치할때 대구 국회의원 그 누구도 나를 도와준 일이 없다"고 지적했다.
홍 전 시장은 "재임 동안 대구 국회의원들이 대구를 위해 뭘 했는지 기억나는 게 없다"며 "그런데도 호남반도체를 내가 찬성한다고 니들이 감히 나를 비난하느냐"고 따졌다.
홍 전 시장은 "국가 백년대계를 보고 하는 말을 고작 대통령에게 아부하는 말로만 치부하느냐. 능력이 안되니 지역감정이라도 내세워 국회의원 자리라도 지킬려는 모습들이 가련하다"며 "니들 따위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대구시민들이 불쌍하다"고도 쏘아붙였다.
하지만 TK지역민들은 홍 전 시장을 향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때 정계 은퇴 위기에 내몰린 홍 전 시장에게 재기의 발판을 내주고, 다시금 대선주자로 키워낸 곳이 TK지역임에도 최근 홍 전 시장은 마치 이를 망각한 듯한 언행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홍 전 시장은 본래 경남 창녕 출신이지만, 스스로 고향을 대구라고 언급해왔다. 학창시절을 대구에서 보낸 것은 물론, 정치적 생존과 반등의 기회를 얻은 곳 역시 대구였기 때문이다.
홍 전 시장은 지난 2020년 총선에서 경남 선거구 출마를 타진하다 컷오프 당했다. 당시 선거 불과 한 달 전 선거구를 바꿔 무소속 출마를 감행한 홍 전 시장을 받아준 곳이 대구 수성구을이었다.
불과 3%포인트 차 신승을 거둔 홍 전 시장은 1년 뒤 국민의힘으로 복당했고, 이후 대구를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 두 번의 대선주자를 지냈다. 하지만 홍 전 시장은 지난해 대선에 출마하면서부터 대구 생활을 완전히 정리했다.
한 지역 정가 관계자는 "일부 시민들은 섭섭한 마음에 '왜 평생 안 하던 호남 사위 노릇을 이제와 하냐'는 식의 불평도 한다"며 "과거 홍 전 시장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호남의 사위'라고 말하던 것이 이번 일과 맞물려 회자되는 셈"이라고 했다.
홍 전 시장의 배우자 이순삼 여사는 전북 부안군 줄포면 출신이다. 홍 전 시장 역시 지난 2017년 부안을 방문해 "나는 호남 사위"라며 "1980년 5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부안 읍내에서 부안군민으로 살았다. 처가 동네 와서 방위소집을 13개월 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배신감에 몸부림 치는 TK민심…洪, 안 보나 못 보나
이 같은 반응에도 홍 전 시장은 뜻을 꺾지 않고 있다. 고락을 함께한 지역민들이 느끼는 감정에는 공감하지 못하고, 정치적 옳고 그름에만 집중하는 홍 전 시장의 태도가 대중 정치와는 사뭇 멀어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지점이다.
홍 전 시장은 지난 2일 페이스북에서 "대구가 이번 투자에서 소외된 건 유감"이라면서도 "그걸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라"고 당부했다.
호남 지역에 물과 전기 등 반도체 산업에 필수적인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물이 부족하면 수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면 되고, 전기가 부족하면 SMR(소형모듈원전) 건설을 통해 산업용 전기를 보완해 주면 된다"고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인프라 부족 지역은 영원히 그대로 살라고 방치하는 건 국가가 할 일이 아니"라며 "대형 산업들은 최소 10년 이상 걸리는 국토 대개조 사업인데 그걸 지금 정쟁으로 삼는 건 마치 경부고속도로 건설 때 반대하던 야당의 모습이나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홍 전 시장은 과거 국가 주도의 산업 육성 사례도 언급했다. "울산은 (인구) 6만도 안되던 농촌도시에서 국가의 투자로 한국 중화학 공업의 중심도시가 됐다"며 "포항은 허허벌판 해안가에 국가의 투자로 포항제철을 세워 세계적인 제철 강국이 되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두바이 역시 6만도 안되던 어촌에서 세계 최고의 도시가 된 건 산업 인프라를 국가가 깔아 주고 투자유치를 했기 때문"이라며 "수도권과 영남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한국사회를 그동안 소외됐던 호남지역까지 확장시키는 건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