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책임 공급"…실행계획은 미공개
전문가 "가뭄·전력 안정성 검증 필요"
정부가 서남권에 896조원 규모 반도체 투자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대규모 산업단지를 뒷받침할 전력과 용수 공급 능력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인프라 대책은 필요 물량을 제시하는 수준에 머물러 실제 공급 방식과 안정성 확보 방안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29일 청와대 국민보고회에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의 발표를 들은 뒤 "오늘 발표자 중 제일 힘이 넘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발표에서는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 약 6.3GW의 전력과 하루 65만톤(t)의 용수가 필요하다는 수요 전망이 제시되는 데 그쳤다.
정부는 "전력과 용수 등 기반시설은 국가가 책임지고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공급 경로와 재원 조달, 비상 상황에 대비한 안정성 확보 방안은 공개하지 않았다.
전력 공급 계획도 "송전망을 신속히 구축하고 풍부한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활용해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원칙을 제시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업계에서는 대규모 메모리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중단 없는 전력 공급이 필수인 만큼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어떤 비율로 조합하고 출력 변동성을 어떻게 보완할지가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수요 전망과 발전원 구성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감안하면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안정적인 전력 확보를 위해서는 기저전원 확보 방안이 필수라고 지적한다. 황 교수 계산에 따르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력의 3분의 1 수준인 5GW를 태양광으로만 공급하려면 새만금 간척지의 약 97%를 태양광 설비로 활용해야 한다. 대규모 ESS(에너지저장장치) 구축에도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만큼 재생에너지 확대만으로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현권 경북구미 반도체 특화단지 추진단장(금오공대 신소재공학부 교수)은 "반도체 전공정은 GW급 전력이 24시간 단 한순간도 끊기지 않아야 한다"며 "태양광은 출력 변동성이 커 이를 보완할 대규모 ESS나 기저전원이 함께 확보되지 않으면 안정적인 생산이 어렵다. ESS는 화재 위험도 있는 만큼 정부가 구체적인 전력 공급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수 공급 계획 역시 구체성은 부족했다. 정부는 다목적댐과 발전용수, 대체 수자원 등을 활용해 안정적으로 용수를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확보 방안은 설명하지 않았다.
정부가 제시한 용수 규모도 기존 설명과 차이를 보였다. 이 대통령과 김 장관은 지난 주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호남권 물 부족 우려를 반박하며 하루 100만t의 추가 용수 공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발표에서는 반도체 클러스터의 필요 용수를 하루 65만t으로 제시했다.
정부는 기존 수자원 운영 체계를 조정해 필요한 물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과거 다른 용도로 배분됐지만 실제 사용되지 않은 물을 재산정하고 수계를 조정하면 추가 공급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서남권 댐의 여유 용량을 활용하면 하루 40만~50만t의 추가 공급이 가능하고, 발전용·농업용 댐까지 활용하면 30만t 이상을 더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계산이 정상적인 강수량을 전제로 한 추정치라는 점을 지적한다. 영산강과 섬진강 유역은 한강 유역보다 규모가 작아 가뭄이 발생할 경우 확보 가능한 용수도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23년 남부지방 가뭄 당시 광주·전남의 주요 식수원인 주암댐 저수율은 20% 아래까지 떨어졌다. 대체 수원으로 거론되는 농업용 저수지 역시 농업용수 확보와 수리권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남아 있어 단기간 내 공급 체계를 구축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 단장은 "현재 댐과 저수지의 계약 용수는 대부분 용도가 정해져 있다"며 "정부가 제시한 하루 65만t이라는 수요가 실제 반도체 팹 운영에 필요한 용수와 부합하는지, 기존 수자원 체계만으로 새롭게 발생하는 대규모 산업용수를 감당할 수 있는지부터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