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에너지 수도 그 이후 '전력의 땅에서 산업의 땅으로'

입력 2026-07-19 10: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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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자립률 251% '전국 1위' 경북…생산 전력 절반 이상 타 지역 송전
지역별 차등요금제 등 '지산지소형' 전환 없이는 경북 재도약 한계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위치한 한울원전 3, 4호기 모습. 매일신문DB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위치한 한울원전 3, 4호기 모습. 매일신문DB

전국 전력 생산량 1위의 경북도가 영덕 신규 원전 2기까지 확정지으며 한국 에너지 생산의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굳혀 가고 있다.

그러나 생산 전력의 절반 이상이 타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구조 속에서 산업 발전을 견인할 각종 정책은 여전히 더디다.

울진 수소산단·경주 SMR산단·포항 AI데이터센터 등 '전기를 만드는 땅'에서 '전기로 먹고사는 땅'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순간이다.

경북 영덕군 신규 원전 부지.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경북 영덕군 신규 원전 부지.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국내 전력생산 1위…소비는 절반 이하

지난해 기준 경북의 전력생산량은 10만7천143GWh(국내 전력 생산량의 18%)로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전력자립률 역시 251.8%로 전국 최고다. 2위인 전남(215.0%), 3위인 충남(209.3%)을 큰 격차로 따돌린 수치다.

반면, 경북 도내에서 실제 소비되는 전력량은 4만2천557GWh에 불과하다.

생산량의 56% 이상에 해당하는 6만4천586GWh가 수도권을 비롯한 타 지역으로 송전된다.

최근 영덕 원전 유치로 경북은 동해안을 따라 울진·영덕·포항·경주 4개 시군을 잇는 에너지 벨트의 완성 그림을 갖추게 됐다.

원전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새로운 산업으로 연결하려는 구상도 동해안 각지에서 동시다발로 진행 중이다.

울진에서는 죽변면 후정리 일원 약 144만9천㎡ 부지에 총 4천107억원을 들여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원전의 잉여 전력을 이용해 청정수소를 대량 생산한다는 청사진이다.

신한울 3·4호기가 완공되는 2033년 무렵 울진에서 확보 가능한 전력은 최대 2GW에 달하며 이를 활용하면 연간 30만톤(t)의 수소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이 울진군의 구상이다.

경주에서는 SMR 국가산업단지 조성이 추진되고 있다.

경주시 문무대왕면 두산리·어일리 일원 114만㎡에 총 3천936억원을 투입해 2032년 완공이 목표다.

경주는 이달 국내 첫 소형모듈원자로(SMR) 건설 후보지 공모에서 부산 기장군에 밀려 탈락했지만, 문무대왕과학연구소와 SMR 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은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에 위치한 경북도 에너지산업융복합단지 종합지원센터 전경. 경북도 제공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에 위치한 경북도 에너지산업융복합단지 종합지원센터 전경. 경북도 제공

◆경북 에너지고속도로 언제쯤

경북도는 생산된 에너지를 지역 산업과 연결하기 위해 동해안 해저 전력망 에너지고속도로와 수소에너지고속도로 두 개의 축을 제시하고 있다.

동해안 해저전력망은 울진·영덕·포항·경주를 잇는 해상 230km 구간에 DC 500kV·용량 4GW의 초고압직류(HVDC) 송전선로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총사업비는 4조원으로 추정되며, 경북도는 현재 기본구상 계획 수립 용역을 진행 중이며 이후 이후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반영을 국회와 기후에너지환경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TK권역 수소에너지 배관망 구축도. 경북도 제공
TK권역 수소에너지 배관망 구축도. 경북도 제공

수소에너지고속도로는 포스코에서 영덕을 거쳐 울진으로 이어지는 133km 길이의 수소배관망을 2026년부터 2034년까지 9년간 약 9천560억원(민자·지역활성화펀드)을 투입해 구축하는 사업이다.

시범사업으로는 포항시 수소도시 사업과 연계해 철강산단에서 블루밸리산단까지 18.7km 구간의 수소배관망 구축이 먼저 추진된다.

경북도는 중장기적으로 4단계에 걸쳐 718km의 수소배관 네트워크를 경북 전역에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에너지고속도로 구상이 실현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진행 중인 기존 500kV HVDC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 건설사업은 2019년 준공 목표에서 수차례 지연됐으며, 현재로서는 4년 이상 더 늦어질 것이 확실시된다.

지난달 23일 포항 남구 오천읍 광명일반산단 내 대규모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립 예정 부지 모습. 이곳 10만㎡ 부지에는 5천500억원을 투입해 40MW급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며, 2027년 10월 상업운전을 시작할 예정이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난달 23일 포항 남구 오천읍 광명일반산단 내 대규모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립 예정 부지 모습. 이곳 10만㎡ 부지에는 5천500억원을 투입해 40MW급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며, 2027년 10월 상업운전을 시작할 예정이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역 생산 지역 소비(지산지소)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에너지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목하는 핵심 과제는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도입이다.

현재 전국 단일요금제 아래에서는 경북에서 전기를 만들어도 수도권에서 쓰는 전기와 요금이 같다. 장거리 송전에 드는 막대한 비용도 요금에 반영되지 않는다.

경북의 현재 전력 정산단가는 73원/kWh로 전국에서 가장 낮다.

부산(89원), 전남(94원), 울산(102원)과 비교해도 뚜렷한 차이다.

이 격차를 소매요금에 반영할 경우 경북에 산업용 전기를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게 되고, 수도권 기업의 지방 이전이나 첨단산업 유치에 실질적인 유인이 생긴다는 논리다.

2023년 국회를 통과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으로 지역별 전기요금제의 시행 근거는 이미 마련돼 있다.

정부는 당초 2025년 도매요금 차등, 2026년 소매요금 차등화라는 로드맵을 제시했고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유세에서 "발전소가 있는 지방은 싸게, 소비지는 송전비를 붙여서 더 비싸게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으며 국무회의에서도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도입 의지를 거듭 밝혔다.

그러나 실제 시행은 속도가 붙지 못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최근 구체적인 도입 방안을 올 하반기, 늦어도 연말까지 공개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시행 시점이 2027년 이후로 밀릴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수도권 기업들의 반발,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민생 부담, 한전의 재무 상태 등 여러 변수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경북 경주시 감포읍에 조성 중인 문무대왕과학연구소 조감도. 이곳은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과 선박용 원전 연구를 위해 건립된 한국원자력원구원의 분원이다. 경북도 제공
경북 경주시 감포읍에 조성 중인 문무대왕과학연구소 조감도. 이곳은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과 선박용 원전 연구를 위해 건립된 한국원자력원구원의 분원이다. 경북도 제공

◆에너지 정책과 산업 정책의 동행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경북을 중심으로 허탈감이 번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전력통계에 따르면 원자력 발전량의 76%가 경북·울산·부산에 집중돼 있다.

전력과 용수, 인력 측면에서 영남 지역이 유리하다는 주장이 여야를 막론하고 나오고 있는 이유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은 대규모 안정적 전력 공급이 필수 요건이다.

경북도는 국내 가동 원전의 50%를 보유한 '무탄소 전력의 땅'이 AI산업·반도체·데이터센터 등 미래 첨단전략산업의 입지 최적지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정부와 기업에 지속적으로 건의하고 있다.

포항 블루밸리산단에 2조원 규모의 AI 데이터센터가 착공된 것도 이 같은 흐름의 일환이다.

경북도는 산업 유치와 함께 에너지 관련 연구기관 유치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방사선환경 로봇실증센터에는 한국원자력환경복원연구원이, SMR 제작지원센터에는 한국재료연구원이 입주 예정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기업 유치와 인구 감소 방지, 지역 재정 확충이라는 경북의 과제를 에너지 인프라와 연결 짓는 '에너지 수도 경북'의 미래 방정식을 대변한다.

그러나 이를 현실로 연결하는 고리는 여전히 취약하다.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시행 시점은 불투명하고, 에너지고속도로 구상은 기본구상 단계에 머물고 있다.

울진 수소산단과 경주 SMR산단의 착공까지도 행정 절차상 수년이 더 필요하다.

에너지 생산지인 경북이 에너지 소비와 산업을 함께 품는 구조로 전환되기까지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최영숙 경북도 환동해지역본부장은 "앞으로는 산업이 전력을 따라 움직이는 시대이다. 현재 경북은 전국 에너지자립률 1위의 강점을 바탕으로 AI 첨단산업을 이끌어 낼 대한민국 에너지수도로 도약하고자 한다"면서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동해안 HVDC 송전망 구축과 풍력산업 육성, SMR 건설, 원전 기반 전력구매계약(PPA) 제도 도임 등을 적극 추진하며 국가 에너지 안보와 지역균형발전을 동시에 실현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에너지경제 모델을 완성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