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읽남] 김광진의 화자들 下편 '사랑은 끝나도 화자는 남는다'

입력 2026-08-21 12: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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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진. 예음컬처앤콘텐츠
김광진. 예음컬처앤콘텐츠
[음읽남] 김광진의 화자들 下편
[음읽남] 김광진의 화자들 下편 '사랑은 끝나도 화자는 남는다' 일러스트. AI로 생성한 이미지

김광진의 음악 세계에선 이별을 단순한 사건으로 다루지 않는다. 헤어졌다는 사실보다, 헤어진 뒤에도 사람 안에 남는 감정의 형태를 더 오래 차분히 바라본다.

사랑은 끝났는데 마음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사람, 닿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 작별을 말하면서도 그 작별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 사람. 김광진의 노래 속 화자들은 대체로 이런 자리에 서 있다.

김광진 5집
김광진 5집 'Last Decade' 음반

◆떠났지만 떠나지 못한

김광진 작사 작품 'Still Belongs 2 U'(2008, 5집 'Last Decade')는 제목부터 그의 화자론을 요약한다. 우리말로 풀면 "아직도 당신에게 속해 있다"는 뜻. 이미 사랑은 끝났는데, 화자의 마음은 여전히 상대에게 묶여 있다. 관계는 끝났지만 마음의 소속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화자는 상대를 붙잡는 사람도, 깨끗이 잊은 사람도 아니다. 그 중간에 머물러 있다. 사랑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 안의 어떤 부분이 아직 상대에게 붙들려 있음을 인정한다.

"못됐어, 너 못됐어. 넌 내 맘을 언제나 지배하잖아, 알 수 있잖아."
"My heart still belongs to you. I need your smile.(내 마음은 아직 당신 거예요. 당신의 미소가 필요해요.)"

화자는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상대를 향해 분노하지도 않는다. 스스로를 한심하다며 몰아붙이지도 않는다. 다만 끝난 사랑이 끝난 뒤에도 얼마나 오래 사람 안에 남는지 생활의 언어로 읊는다.

'편지'가 사랑을 놓아줘야 했던 사람의 언어로 쓰였다면, Still Belongs 2 U는 사랑을 놓아주지 못한 사람의 언어로 적혔다. 두 곡은 정반대의 자리에 위치해 있지만, 김광진의 음악 세계가 사랑에 대해 하나의 결론만 도출하지 않는다는 공통 근거가 된다. 사랑은 단순히 얻거나 잃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사랑이 지나간 뒤 남는 마음의 거처는 사랑의 숫자 만큼 다양한 풍경을 만든다.

김광진 4집
김광진 4집 '솔베이지' 음반

◆멀리서 바라보는

아내 허승경이 작사한 또다른 히트곡 '동경소녀'(2002, 4집 '솔베이지')의 화자는 사랑의 중심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다. 그는 상대에게 다가가기보단 바라본다. 사랑한다기보단 동경한다.

'동경(憧憬)'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거리를 품고 있다. 가까이 손을 잡는 사랑이 아니라, 닿지 않는 곳의 빛을 바라보는 감정이다. 그래서 이 노래의 화자는 적극적인 구애자는 아닌 걸로 느껴진다. 사랑의 문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 아니라, 문밖에서 안쪽을 바라보는 사람에 가깝다.

"몇 번 씩이나 전화하려 했었지만, 네 곁에 선 그 사람이 맘에 걸렸어."
"넌 왜 지금도 나를 자꾸만 나를 아프게 해. Oh, My 지금도 너를, 나만의 너를, I Stiil Love You(난 아직도 널 사랑해)."

이런 표현들은 사랑의 현실이라기 보단 상상의 영역에 가깝다. 화자는 상대를 현실의 연인으로 붙잡기 어려워 자기 안의 이미지로 간직하려는 건 아닐까. 그래서 이 곡은 얼핏 사랑의 시작을 예고하는 노래 같지만, 실은 상실의 가능성도 품고 있다. 애초에 닿을 수 없는 상황, 전할 수 없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노래는 사랑을 성취한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을 화자로 출연시켰다. '편지'의 삼각관계에서 떠나는 사람,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의 존재를 바라보는 사람, '여우야'의 사랑이 불안한 사람에서 이어지는 계보다. 그러고 보면 김광진의 작품 속 사랑은 늘상 중앙보단 가장자리에서 장면을 촬영한다.

◆사랑의 가장자리

살펴본 작품들(편지,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 여우야, Still Belongs 2 U, 동경소녀)을 비롯해 김광진의 노래 속 화자들은 발라드의 진수를 구현하면서도 뻔하게 그 절정만 노래하진 않았다. 사랑이 어긋난 자리, 멀어진 자리, 끝난 뒤에도 마음이 남아 있는 자리를 오래 들여다봤다.

이 다섯 곡의 화자는 서로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사랑을 얻지 못한 사람, 사랑을 잃은 사람, 사랑을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 사랑이 끝났는데도 마음은 끝나지 않은 사람, 사랑 속에서 이미 이별을 예감하는 사람.

아니, 어쩌면 이들은 모두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시간을 통과하며 조금씩 다른 얼굴을 갖게 된, 김광진의 음악 세계 속 한 사람 말이다.

<끝>

국내 라이브 무대 새 아이콘으로 떠오른 김광진이 올해 4월 발표한 라이브 앨범
국내 라이브 무대 새 아이콘으로 떠오른 김광진이 올해 4월 발표한 라이브 앨범 'THE PULSE(더 펄스) 김광진 LIVE 2026' 표지. 예음컬처앤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