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의 찰나의 순간 역사적 기록 〈특집〉 K-People : 은근과 끈기의 위대한 한국인<1>

입력 2026-07-0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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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창간 80주년 특별 기획 사진전…8월 11일~23일 대구문화예술회관
80년 시대정신 담은 사진 400점 …11,12,13 전시실에 11개 섹션 기획전

매일신문사는 창간 80주년 특별 기획으로 오는 8월 11일부터 23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K-People : 은근과 끈기의 위대한 한국인' 사진전을 갖습니다. 사진전에는 매일신문사가 격동의 현대사 80년을 생생히 기록해 온 사진과 신문 지면 등 약 400점을 선보입니다.

사진전은 지난 80년 시대정신을 11개 섹션으로 선보입니다. 해방후 전쟁의 폐허를 딛고 근대화 산업화를 통해 가난을 물리치는 과정, 분단 현실에 일상이 된 '반공'과 '새마을운동', 권위주의 시대와 IMF체제 극복, 이를 통해 마침내 세계가 주목하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군 K-People, 위대한 한국인을 조명합니다.

전시 사진은 매일신문 아카이빙센터에 소장 중인 수십만 장의 기록사진 가운데 엄선한 것으로, 특히 한국 현대사에 중추적 역할을 해 온 대구경북 역사 현장 중심으로 선보입니다. 다음달 열릴 특별 기획 사전전에 앞서 주요 사진을 소개합니다.

1945년 10월 1일 미군 환영대회장인 대구역에서 동인로타리로 시가행진하는 치안유지대. © 이윤수/ 매일신문
1945년 10월 1일 미군 환영대회장인 대구역에서 동인로타리로 시가행진하는 치안유지대. © 이윤수/ 매일신문

1945년 치안유지대 1945년 해방과 함께 남한에 미군정(美軍政)이 시작돼 10월 1일 대구에 미군이 첫 입성하자 대구역 광장에서 환영회가 열렸다. 이 무렵 좌·우익계열 치안유지단체가 난립하자 미군정은 10월 23일 모든 치안단체를 해산시키고 치안권을 경찰에 이양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경축 대구시민대회장인 대구역 광장으로 들어오는 시가행렬. © 안월산/매일신문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경축 대구시민대회장인 대구역 광장으로 들어오는 시가행렬. © 안월산/매일신문

1948년 정부수립 경축 대구시민대회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 일제에 국권이 피탈된 지 38년, 광복 후 미군정 3년 만이었다. 이로써 미 육군 존 하지 중장이 군정사령관에, 헨 대령이 경북지사에, 존 콘치 대위가 대구부윤(시장)에 취임하면서 실시된 미군정은 정부수립과 함께 폐지됐다.

1950년 7월 27일 한국전쟁 당시 대구 임시국회의사당(구 한일극장)에서 열린 제8회 임시국회 개회식에서 연설하는 이승만 대통령. 매일신문
1950년 7월 27일 한국전쟁 당시 대구 임시국회의사당(구 한일극장)에서 열린 제8회 임시국회 개회식에서 연설하는 이승만 대통령. 매일신문

1950년 임시수도 대구 6.25전쟁 초기 전세가 악화되자 정부는 7월 16일 대전에서 대구로 피난, 8월 17일까지 대구를 임시수도로 삼았다. 포정동 경북도청은 임시정부청사, 구 한일극장은 임시국회의사당, 학교와 공공 시설은 군 주둔지로 징발됐다. 낙동강 전선이 위험해지자 정부는 8월 17일 밤 다시 부산으로 옮겨갔다.

1959년 9월 17일 추석날 태풍 사라호가 몰고 온 폭우와 해일로 강구항이 물바다로 변하자 뒷산으로 피신한 주민들. © 매일신문
1959년 9월 17일 추석날 태풍 사라호가 몰고 온 폭우와 해일로 강구항이 물바다로 변하자 뒷산으로 피신한 주민들. © 매일신문

1959년 사라호 태풍 1959년 추석날 닥친 태풍 사라호는 초속 45m의 강풍과 폭우로 대구·청도·경산, 영천·경주·포항, 안동·청송·영덕을 휩쓸고 울진까지 초토화 시켰다. 경북에서만 사망·실종 280명(전국 929명), 부상 1천277명, 이재민 40만8천83명이 발생해, 사라호는 해방 후 가장 무서운 태풍이었다.

1960년 2월 28일 대구 신천에서 열린 민주당 장면 부통령 후보 선거유세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 © 매일신문
1960년 2월 28일 대구 신천에서 열린 민주당 장면 부통령 후보 선거유세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 © 매일신문

1960년 정·부통령 선거 신천 유세장 1960년 3·15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조병옥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미국에서 병 치료 중 급서했다. 자유당은 대통령에 이승만(85) 당선은 무난했지만 고령으로 사망 시 부통령에 대통령직 승계를 우려해 이기붕 부통령 당선에 사활을 걸었다. 조병옥 국민장(25일) 직후 대구에서 민주당 첫 선거유세가 열린 2월 28일, 일요등교·일요출근·외지출장 등 당국의 방해에도 10만 인파가 운집했다. 멀리 왼쪽은 수성교, 가운데 큰 건물은 남산여고와 신명여중이다.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 소식에 중앙통(로)으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 © 매일신문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 소식에 중앙통(로)으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 © 매일신문

1960년 4·19혁명의 날 대구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에 경북대, 대구대, 청구대 등 3개 대학 교수단과 대학생, 남녀노소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중앙통(로)은 온통 감격의 도가니였다. 자유당 12년 독재정권을 물리친 4·19혁명 출발지는 고교생들이 불의에 항거했던 '2·28의 도시' 대구였다.

1966년 6월 경북의 한 들판에서 밀을 수확하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아낙네. © 매일신문
1966년 6월 경북의 한 들판에서 밀을 수확하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아낙네. © 매일신문

1966년 보릿고개 넘는 모정 1960년대 민초들의 삶은 유난히 힘들었다. 해마다 몸서리 치는 물난리에, 무시로 찾아드는 극심한 가뭄에 이맘때면 곳간은 여지없이 바닥을 드러냈다. 그래도 어머니는 막둥이를 들쳐 업고 배고픈 보릿고개를 넘고 또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