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기지와 70년 동거, '상생의 동반자'로 가려는 노력들

입력 2026-07-07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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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기지, 미군들의 훈련소이자 그 가족들의 생활공간… '작은 미국사회'
어떻게 인연을 맺기 시작하고 이어왔나… 대구 시민들의 적극적인 움직임들
KAFC(Korea Army Friendship Circle), 한미친선서클 가정 스폰서 이진욱 씨
적극적 봉사, 루크 김 대위 "함께 활성화했던 '글로벌 앞산캠프' 건재, 뿌듯해"
미군 인성에도 선한 영향력… 친밀한 기억은 오래 가기 마련, 다시 떠올리게 돼
계명대의 오랜 인연도 주목… 2022년 모집 중단했지만 미국학과 개설해 교류

대구 남구에 있는 미군부대 캠프워커 출입구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대구 남구에 있는 미군부대 캠프워커 출입구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대구와 주한미군기지의 동거는 1959년부터로 본다. 70년 가까운 동거다. 미군기지에 있는 이들 모두가 야전에 최적화된 건 아니다. 대구 도심의 주한미군기지는 군인들의 훈련장이자 그 가족들의 생활공간이다. 식당, 슈퍼마켓, 세탁소, 학교 등을 갖춰 웬만한 읍내보다 크다. 그래서 혹자는 이곳을 '작은 미국사회'라 불렀다.

미군들은 평화로운 시기에 지역 주민들과 교류를 시도했고, 부대 인근 주민들도 화답했다. 서로를 이해하고 교류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은 선입견 없는 눈으로 서로를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군부대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으나 의식주를 영위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인간 공통의 본성은 비슷했던 것이다.

칠곡 왜관 캠프 캐럴 후문에 조성된 325m 길이의 특화거리의 야경. 칠곡군청 제공
칠곡 왜관 캠프 캐럴 후문에 조성된 325m 길이의 특화거리의 야경. 칠곡군청 제공

◆대학생 때 시작한 교류, 가장이 되고서도

자발적인 교류는 '민간 외교'나 마찬가지다. '한미친선서클'(Korea Army Friendship Circle)에서 3년 동안 한국인 가족 참가자로 활동했던 이진욱 씨는 '교류'의 방식이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음을 알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이 씨가 처음 주한미군과 교류했던 것은 대학 재학 때인 2011년이다. 군 제대 후 복학해 게시판을 살피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 중 하나가 'KAFC' 회원 모집 안내였다. KAFC는 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교류 모임이었다. 미군 가족, 한국인 가족, 대학생 3~4명 등으로 구성돼 하나의 그룹을 이뤘다.

대학생으로 참여했던 기억들은 10년 뒤에도 설렘이란 감정의 잔상으로 남았다. 결혼을 해 아이를 낳은 뒤인 2022년, 그는 다시 KAFC의 교류를 떠올렸다. 아이들에게 교류를 통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좋은 경험을 여러 사람에게 권하는 건 인류사의 지혜이기도 했다.

16~7세기 오스만투르크가 비엔나 공성전에서 뜻하지 않게 커피를 전했듯 군부대와 음식 문화의 전파는 불가분의 관계다. 주한미군부대도 식생활 관련 문화가 전파되는 통로 역할을 한다. 사진은 칠곡 왜관 캠프 캐럴 후문의 한 경양식 식당의 메뉴.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햄버거, 시내소, 코돈블루.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16~7세기 오스만투르크가 비엔나 공성전에서 뜻하지 않게 커피를 전했듯 군부대와 음식 문화의 전파는 불가분의 관계다. 주한미군부대도 식생활 관련 문화가 전파되는 통로 역할을 한다. 사진은 칠곡 왜관 캠프 캐럴 후문의 한 경양식 식당의 메뉴.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햄버거, 시내소, 코돈블루.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야구장에 함께 가 응원을 하고, 박물관을 찾아 문화적 이질감을 녹이려 했다. 미군이 다민족으로 구성된 조직인 만큼 그들도 열린 태도를 갖고 있다는 건 장점이었다. 다채로운 문화 교류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먹거리였다. 요리 활동도 있었다. 식비 등 부대비용이 제법 들었지만 이를 상쇄할 만한 교류가 충분하기에 가심비(비용 대비 만족도)는 높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문화 교류에 매우 적극적이었고 신기해했다. 가족 구성원들의 역할 분담, 식사 습관, 대화 방식 등 우리와 다른 부분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할로윈이나 독립기념일 행사에 참여하면서 미국의 역사를 알 수도 있었다고 했다. 미군들이 2~3년에 한 번씩 근무지를 바꾼다는 게 단점이었지만 좋은 인연은 기억에 남기 마련이었다.

[그래픽] 주한미군 병력 추이 (서울=연합뉴스) 이재윤 기자
[그래픽] 주한미군 병력 추이 (서울=연합뉴스) 이재윤 기자

◆계명대와 주한미군의 오랜 인연

계명대는 주한미군과 오래 교류한 이력이 있다. 개신교를 건학 이념으로 삼은 학교다 보니 1950년대 6.25전쟁 이후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과 주한미군의 관련성을 부인할 수 없다. 계명대는 대구경북에서는 유일하게 '미국학과'를 개설하기도 했다. 미국의 정치, 문화, 그리고 영어까지 커리큘럼으로 삼았기에 대구에 있는 미군부대와도 친숙한 관계를 유지했던 터다.

이 학과 학생들은 매년 두어 차례씩 정기적으로 미군부대를 찾았고 미군들의 직장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학생들 중 좀더 미국 문화를 체험하려는 이들은 '주한미군부대 인턴십'에 지원해 6개월에서 1년 정도 미군부대에서 일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들은 미국 기업이나 미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떨쳐주었고 일부 졸업생들은 미국으로 유학을 가거나 미국계 기업과 주한미군부대에 취업했다.

계명대는 매년 6.25를 맞아 추념식을 연다. 필리핀과 에티오피아 등 해외 파병용사를 비롯해 우리나라 파병용사들을 초청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계명대 제공
계명대는 매년 6.25를 맞아 추념식을 연다. 필리핀과 에티오피아 등 해외 파병용사를 비롯해 우리나라 파병용사들을 초청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계명대 제공

학생들은 '작은 미국'이라는 미군부대에서 일하며 미국인들의 생활문화를 체득했다. 사실상 어학연수 프로그램에 비견되는 환경으로 장점이 많았지만, 장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무엇보다 압박감이 적은 업무 절차나 불필요한 의전이 필요 없다는 점은 한국 직장 문화와는 괴리감이 느껴진다 할 만큼 달랐다.

야근도 없고, 연차 사용에도 자유로웠다. "You've got fired(당신 해고야)" 한마디로 직장에서 해고되는 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소싯적 TV프로그램 출연작 'The Apprentice(어프렌티스·견습생)'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에 불과했다. 범법 행위가 아닌 이상 해고에 대한 공포는 전혀 없었다.

안타깝지만 현재는 '주한미군부대 인턴십' 프로그램이 없다. 코로나19 시국이던 2021년 상반기 우리 정부가 내놓은 '현장 실습 학기제 운영 규정'에 따라 조건을 충족할 수 없게 되면서 축소됐다가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계명대는 매년 6월 25일이면 참전용사들과 주한미군 관계자, 그리고 주한 미 영사관 직원들을 초청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군인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행사를 갖는다. 신일희 계명대 총장은 "6.25전쟁은 민족사에서 가장 참혹한 비극이었지만 동시에 전 세계가 연대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위대한 역사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대구 남구청과 주한미군기지 대구기지사령부 본부중대가 함께 한
대구 남구청과 주한미군기지 대구기지사령부 본부중대가 함께 한 '글로벌 앞산캠프'. 주한미군 대구기지사령부 본부중대 제공

◆주한미군도 교류에 열성, 루크 김 대위

주한미군 대구기지사령부 본부중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루크 김(Luke Kim) 대위는 현지 주민들과의 교류가 가져오는 무형의 힘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 중 하나였다. 특히 그는 중위로 근무했던 2023년 대구 남구청의 '글로벌 앞산캠프'의 자원봉사자로 참여했었고, 만남의 횟수를 늘리며 교류 활성화에 팔을 걷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

2년 뒤 대위로 진급해 다시 온 대구에서 '글로벌 앞산캠프'가 여전히 인기리에 진행 중이라는 걸 본 그는 50명의 중대원들에게 교류를 통한 상호작용의 장점을 찬미했다.

'글로벌 앞산캠프'는 단순히 지역의 초중교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는 기회로 볼 수도 있지만, 결코 언어 습득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함께 먹고, 놀고, 움직이는 문화적 교류를 병행한다. 김 대위는 "아이들에게 경험을 선물할 수 있고, 꿈과 희망을 함께 말할 수 있다는 건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지점이자 커다란 기쁨"이라고 했다.

마치 조선시대 향약의 덕목인 '덕업상권(德業相勸)'을 실현하려는 사람처럼 "하면 좋으니까요"라고 덧붙였다. 주한미군은 체계적으로 '굿네이버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교류 활성화를 독려하고 있다. 김 대위 역시 중대원들과 무료급식소 노인 급식 봉사 등에 나선다고 했다. 주민들과 교류에 활용할 수만 있다면 어떤 능력이라도 끌고 올 기세다.

대구기지사령부 본부중대가 지난 5월 교류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주한미군사령부로부터
대구기지사령부 본부중대가 지난 5월 교류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주한미군사령부로부터 '연합 우호증진 최우수 대사상(Best of Best Ambassador for the Alliance Good Neighbor Award) – 부대 부문' 표창을 받았다. 주한미군 대구기지사령부 본부중대 제공

그에게서 2023년의 이준 중령이 겹쳤다. 이 중령 역시 주한미군으로 대구에서 근무했던 이다. 군생활 마지막까지 영어교육 자원봉사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학생들의 열정을 보면 나도 힘이 나 더 열심히 수업을 준비한다. 학생들에게서 나 자신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김 대위는 어린 시절 맺은 인연이 평생을 간다고 믿기에 '글로벌 앞산캠프'의 미래 가치를 더 크게 매겼다. 그는 고교 시절부터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숱한 멘토들을 만났다고 했다. 그를 군인의 길로 이끈 계기도 멘토들의 여러 조언 중 하나였다. 그는 "어릴 때 경험한 좋은 기억은 잘 저장돼 어른이 돼서도 언젠가 갑자기 재생된다"고 했다.

희망사항도 전했다. 한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한미군과 주민들의 교류를 위해 우선순위로 둘 부분은 '소통'과 '이해'라고 했다. 잘 꾸며진 특정 공간이 없어서 교류를 못하는 게 아니라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결국은 사람의 일이라는 조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