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이민재 '농대생이 키운 딸기 농장' 대표…딸기랑 익어가는 스물다섯 청년의 꿈

입력 2026-06-17 16:04:55 수정 2026-06-17 18: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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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만 팔로워 농업 인플루언서…올해 1억3천만원 매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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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 '농대생이 키운 딸기 농장' 대표가 수확이 끝난 딸기 재배 온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오랜 세월 인류 문명과 함께해온 농업. 농업은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한다. 특히나 청년 세대들에겐 구시대 유물처럼 느껴질 법도 하다. 하지만 대한민국 곳곳엔 농업에서 비전을 발견하고 청년 특유의 도전정신으로 농업의 맥을 잇는 청년들이 있다.

경북 포항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이민재(25) '농대생이 키운 딸기 농장' 대표도 그들 중 하나다. 그는 10대 시절 이미 농업으로 진로를 정하고, 대학 신입생 때부터 차근차근 실전 경험을 쌓아 2024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창업했다.

그는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 청년농답게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직거래 판로를 넓히고 있다. 그 결과 올해는 1천400여㎡(450평) 규모 소규모 온실에서 딸기를 재배해 1억3천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 14일 포항시 북구 송라면 농장에서 만난 그는 "농업도 충분히 미래가 있는 산업이란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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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 '농대생이 키운 딸기 농장' 대표가 딸기를 수확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본인 제공

-고교시절 스스로 진로를 결정했다. 그것도 상당수 청년들이 외면하는 농업분야였다.

▶이렇게 진로를 정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저는 공부를 열심히 하던 학생은 아니었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나중에 무슨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게 되면서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됐다. 지금 공부를 시작해서 이미 기초가 탄탄한 친구들을 따라잡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보다 조금은 유리하게 시작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당시 부모님은 포항 시내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틈틈이 부업으로 산딸기 농사를 짓고 계셨다. 어릴 때부터 주말마다 부모님을 도와 농장에서 농사일을 조금씩 해왔던 터라 익숙했다. 처음엔 부모님이 감·사과 농사를 지으셨는데 산딸기로 바꾸면서 수익이 많이 개선되는 걸 보게 됐다. 농업도 잘 배우고 작목 선택을 잘 하면 충분히 사업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농업이 적합하겠다고 생각했고, 농대 진학으로 이어졌다.

-경북 포항이 고향이다. 그런데 충남대로 진학했다.

▶농업으로 방향을 정한 뒤 진학을 고민하던 때였다. 훗날 연구자가 될 게 아니라면 대학을 가더라도 실무를 더 배울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찾아낸 게 영농창업특성화사업단이었다. 농업분야 실무형 전문 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이 부전공처럼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전국에 사업단을 운영하는 대학이 많지 않은데다, 경북대 수시모집에서 떨어지면서 그 다음으로 희망했던 충남대 원예학과로 진학하게 됐다.

-대학 진학 때부터 딸기를 염두에 둔 건가.

▶그건 아니다. 진학 당시만 하더라도 농업분야를 공부해야겠다, 졸업 후엔 농업 관련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 정도였다.

입학 후 충남에서 특별히 육성하는 작물 중에 딸기가 포함돼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토마토, 표고버섯 등도 있었지만 가장 매력적인 게 딸기였다. 호불호가 없는 작물인데다, 부모님이 재배하는 산딸기와 같은 베리류인 만큼 훗날 창업을 하고 마케팅·브랜딩을 할 때 이점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제가 선택한 충남대도 딸기 관련 교육 여건이 상당히 좋았기에 딸기를 선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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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 '농대생이 키운 딸기 농장' 대표는 "농업도 충분히 미래가 있는 산업이란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도훈 기자

-대학에선 어떤 활동을 했나.

▶딸기 동아리 활동에 주력했다. 졸업 후 농사를 지을 계획이었던 만큼, 1년 주기로 이뤄지는 딸기 재배 전 과정을 4년 동안 경험한다면 엄청난 자산이 되겠다고 생각한 거다. 게다가 대학 생활 상당 부분이 코로나 팬데믹 시기였기에 동아리 활동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창업 의지가 강해서였는지 3, 4학년 때는 해외연수 대상자로 뽑혀 네덜란드와 일본도 다녀올 수 있었다.

-창업은 언제 했나. 창업비용과 현재 수익은 어느 정도인가.

▶2024년 2월 대학을 졸업한 직후 그해 4월 농업경영체 등록을 했다. 딸기 농사는 그해 9월부터 시작했다. 딸기 작기는 일반적으로 9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로 보는데, 창업 이후 두 번째 작기를 마친 셈이다.

창업을 위해 대학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이 7천만원 정도 있었지만, 부모님의 도움이 컸다. 현재 농장이 있는 땅은 부모님이 증여해주신 거다. 그밖에 2억원 규모의 시설비 중 8천만원 정도는 경북도·포항시의 지원을 받았다.

온실 규모는 450평, 실제 재배 면적 370평 정도다. 첫 작기 매출은 9천만원이었고 이번엔 1억3천만원 정도로 늘었다.

-스물세 살에 창업했다. 병역 의무 이행 여부가 궁금하다.

▶후계농업경영인 산업기능요원이란 게 있다. 현역 입영대상자 또는 사회복무요원 소집 대상 보충역 중 본인의 영농기반에서 후계농업경영인으로 영농활동을 함으로써 군 복무를 대체하는 제도다. 현재 후계농업경영인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 중이다. 엄밀히 따지면 군인 신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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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 '농대생이 키운 딸기 농장' 대표가 부모님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산딸기 수확을 돕고 있다. 김도훈 기자

-1만4천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한 농업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SNS를 시작한 것도 창업 준비의 일환이었다. 어느 날 영농창업특성화사업단 활동으로 SNS 활용을 잘 한다는 한 농가에 벤치마킹을 가게 됐다. 그곳에서 '내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란 좀 건방진 생각을 하게 됐고, 그날 바로 SNS를 시작했다. 2학년 때인 2021년의 일이다. 이를 통해 부모님이 생산한 산딸기 유통을 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쁜 사진을 올리고 글을 잘 쓰는 것보다, 꾸준히 하는 게 더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시절 주기적으로 업로드하는 습관을 잡아 놓은 덕분에 농사 일이 바쁘더라도 2~3일에 한 번씩 게시 글을 올릴 수 있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SNS 활동은 상품 판매에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 서울 성수동에 있는 한 카페는 가장 핵심적인 납품처로, 이곳 대표님은 대학 시절 인스타그램을 통해 인연이 됐다.

이 같은 직거래는 가격결정권을 갖기에 농장 규모가 작은 소농에게 유리한 판로다. 저 같은 경우엔 전체 생산량에서 공판장으로 가는 20%를 제외한 나머지 물량은 모두 직거래로 판매하고 있다.

-'농대생 이민재'란 인스타그램 닉네임을 쓰고 있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할 당시는 '청년'이란 단어가 유행할 때였다. 문득 '열정'을 상기시키는 청년이란 단어 이면에 '미숙하다'는 의미가 녹아있는 것만 같았다. 청년을 상징하면서 '미숙함'을 상쇄할 수 있는 단어를 찾다보니 '농대생'을 떠올리게 됐다. 딸기 농장 이름은 '농대생이 키운 딸기 농장', 포장 상자엔 '농대생이 키운 딸기'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다만 졸업생 신분이기에 계속 쓸 순 없을 것 같고, 적당한 이름을 고민하고 있다.

-힘든 점은 없나.

▶수익적인 부분은 예상했던 것보다 괜찮은 것 같다. 다만 사람을 상대해야하는 일이기에 스트레스는 꽤 있는 편이다. 게다가 작물을 키우는 게 만만하지 않은 일이다. 작기인 9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특히 12월부터 5월까지는 쉬는 날 없이 새벽 5시쯤 출근해 오후 6시 넘어 퇴근하는 날이 계속 이어지기에 상당히 힘들다.

이민재 대표가 수확이 끝난 딸기 재배 온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이민재 대표가 수확이 끝난 딸기 재배 온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그럼에도 이 일을 하게 되는 원동력은 뭔가.

▶뿌듯함인 것 같다. 제가 키운 딸기를 맛본 소비자들이 "올해 먹은 딸기 중에 가장 맛있다" "지금껏 먹어본 딸기 중에 제일 맛있었다"는 얘길 들을 때면 모든 것이 상쇄되는 기분이다.

창업 초기 가졌던 목표가 있다. 소비자들에게 실패 없는 딸기를 맛보이자는 거였다. 이런 이유로 흐린 날엔 때때로 배송을 하루 정도 지연시키기도 한다. 맛이 없는 딸기는 과감히 포기하고, 유통 면에서도 보다 더 완벽을 기하며 초심을 지켜가고 싶다.

-후배들이 농장 견학을 오기도 하고, 가끔씩 강연도 한다. 어떤 이야기를 주로 하나.

▶대학 시절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이걸 왜 하고 있지'란 생각이 드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창업을 하고 보니 그런 것 하나하나가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실감한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직접 경험하고 도전해 보는 과정이 중요하다" "학생 때 할 수 있는 활동은 무조건 다 열심히 하라"고 조언한다.

짧은 경험이지만 농업은 아직도 많은 가능성을 가진 분야라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의 시선과 도전이 더해진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결과를 거둘 수 있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