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향 머금고 대금·시조창 소리 잔잔했던 '침수정'

입력 2026-06-09 11: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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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학봉 김종길 종손 종손·유림 등 30여명 초청 '차회' 열어
한애란 원장이 우려낸 차 향과 대금·시조창·시 낭송 어우러져
이동필 전 장관 한시, 복원 침수정 의미 새기고 이날 풍류 담아

지난 8일 안동의 30여명의 종손과 어르신들이 최근 복원된 침수정에서 차향과 대금 소리 어우러진 작은 풍류를 즐겼다. 엄재진 기자
지난 8일 안동의 30여명의 종손과 어르신들이 최근 복원된 침수정에서 차향과 대금 소리 어우러진 작은 풍류를 즐겼다. 엄재진 기자

해가 서산 너머로 천천히 기울기 시작한 지난 8일 초여름 저녁, 150여년 전 선조의 뜻을 받들어 후손들이 낙동강 물길을 굽어보는 곳에 세운 안동 침수정(枕漱亭)에 차향이 은은하게 번졌다.

얼마 전 복원을 마치고 시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침수정에는 이날 특별한 모임이 마련됐다.

학봉 김종길 종손의 초청으로 지역 종가 종손과 유림, 어르신 등 3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잠시 일상을 내려 놓고, 차향을 나누며 옛 선현의 풍류를 되새기는 작은 풍류의 자리를 마련 한 것.

이날 행사에는 침수정 주인 이재업 성균관유도회 경북도본부 회장이 직접나서 손님을 맞았으며, 학봉 종손을 비롯해 종손들과 권기창 안동시장, 이동필 전 장관, 이진구 전 안동문화회관장 등이 참석했다. 행사와 음식은 쑤테이블 권수진 대표가 정성껏 준비했다.

침수정 마루에는 차를 끓이는 물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한국차인연합회 부회장인 문경 명연예다원 한애란 원장이 직접 다구를 살피며 차를 우려냈고, 참석자들은 찻잔을 두 손으로 받들어 향과 맛을 음미했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사람들의 얼굴에는 여유와 미소가 번졌다.

차향이 무르익을 즈음, 임성국 선생의 대금 소리가 정자 안을 가득 채웠다. 대금의 깊고 맑은 선율은 낙동강 물결을 타고 멀리 퍼져 나가는 듯했다.

이어 대한시조협회 안동시지회 이순자 사범의 시조창이 울려 퍼지자 참석자들은 숨소리마저 낮춘 채 귀를 기울였다. 수백 년을 이어온 선비문화의 정취가 복원된 정자 공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문학의 향기도 더해졌다. 안동의 김경숙 시인은 유안진 시인의 작품인 '안동'과 자신의 시 '간고등어'를 낭송하며 고향의 풍경과 삶의 기억을 풀어냈다. 시인의 목소리를 따라 흐르는 언어들은 강바람에 실려 침수정 기둥과 처마 끝에 머무는 듯했다.

지난 8일 안동의 30여명의 종손과 어르신들이 최근 복원된 침수정에서 차향과 대금 소리 어우러진 작은 풍류를 즐겼다. 엄재진 기자
지난 8일 안동의 30여명의 종손과 어르신들이 최근 복원된 침수정에서 차향과 대금 소리 어우러진 작은 풍류를 즐겼다. 엄재진 기자

무엇보다 이날의 주인공은 침수정 그 자체였다. 150여 년 전 선조들이 바라보았을 강물과 하늘, 바람이 지금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노을빛이 강물 위에 번지고 어스름이 내려앉자 정자는 더욱 깊은 운치를 드러냈다. 참석자들은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며 옛사람들이 즐겼던 풍류가 결코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님을 새삼 느꼈다.

낙동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은은한 차향, 대금과 시조가 어우러진 저녁. 복원된 침수정은 단순한 문화유산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고 전통과 현재를 연결하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이날 침수정에서 열린 작은 차회는 거창한 행사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안동이 오랫동안 지켜온 정신문화와 품격,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 갈 새로운 문화의 가능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날의 풍경은 마치 이동필 장관이 차회를 기념해 지은 한시 '침수정에서 만남을 소중히 여기며(枕漱亭惜陰)의 한 대목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맹하산외야기청(孟夏山隈夜氣淸), 강풍송향묘금성(江風送響渺琴聲)' 초여름 산기슭의 맑고 청량한 밤기운 속에 강바람을 타고 아련히 들려오는 대금 소리. 해가 서서히 기울어 가는 침수정의 풍경은 바로 그 시구의 정취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날 참석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복원된 침수정이 지닌 의미였다. 이 전 장관의 한시의 구절처럼 '선조의 남기신 뜻 이제서야 비로소 이루니(先祖遺志始方遂), 한마음 된 후학들 정자 곳곳에 가득하네(後學同心滿處營)'라는 표현은 이날 차회의 의미를 그대로 설명해 주고 있었다.

복원된 침수정에서 열린 이날의 차회는 단순한 모임을 넘어 안동 정신문화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낙동강의 바람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고, 선조들이 남긴 향기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었다. 사람은 가도 향기는 남는다는 시구처럼 '인망향재석금정(人亡香在惜今情)'의 의미를 되새기며, 참석자들은 오래도록 그날 저녁의 풍류를 가슴에 담았다.

김종길 학봉 종손은 "오늘의 자리는 바쁘게 지내온 일상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 놓고, 고즈늑한 정자와 낙동강 물길, 바람이 차향과 대금소리 어우러진 풍류를 통해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 갈 수 있는 힘을 얻고, 선조들의 뜻을 되새기는 기회로 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안동의 30여명의 종손과 어르신들이 최근 복원된 침수정에서 차향과 대금 소리 어우러진 작은 풍류를 즐겼다. 엄재진 기자
지난 8일 안동의 30여명의 종손과 어르신들이 최근 복원된 침수정에서 차향과 대금 소리 어우러진 작은 풍류를 즐겼다. 엄재진 기자
지난 8일 안동의 30여명의 종손과 어르신들이 최근 복원된 침수정에서 차향과 대금 소리 어우러진 작은 풍류를 즐겼다. 사진 오른쪽이 한애란 원장. 엄재진 기자
지난 8일 안동의 30여명의 종손과 어르신들이 최근 복원된 침수정에서 차향과 대금 소리 어우러진 작은 풍류를 즐겼다. 사진 오른쪽이 한애란 원장. 엄재진 기자
지난 8일 안동의 30여명의 종손과 어르신들이 최근 복원된 침수정에서 차향과 대금 소리 어우러진 작은 풍류를 즐겼다. 엄재진 기자
지난 8일 안동의 30여명의 종손과 어르신들이 최근 복원된 침수정에서 차향과 대금 소리 어우러진 작은 풍류를 즐겼다. 엄재진 기자
지난 8일 안동의 30여명의 종손과 어르신들이 최근 복원된 침수정에서 차향과 대금 소리 어우러진 작은 풍류를 즐겼다. 엄재진 기자
지난 8일 안동의 30여명의 종손과 어르신들이 최근 복원된 침수정에서 차향과 대금 소리 어우러진 작은 풍류를 즐겼다. 엄재진 기자
지난 8일 안동의 30여명의 종손과 어르신들이 최근 복원된 침수정에서 차향과 대금 소리 어우러진 작은 풍류를 즐겼다. 사진은 권수진 대표가 진행을 하고 있다. 엄재진 기자
지난 8일 안동의 30여명의 종손과 어르신들이 최근 복원된 침수정에서 차향과 대금 소리 어우러진 작은 풍류를 즐겼다. 사진은 권수진 대표가 진행을 하고 있다. 엄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