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투표용지 110% 예산 받고 50%만 찍은 이유가 뭔가

입력 2026-06-08 05:00:00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드러날수록 가관(可觀)이다. 선관위는 이번 선거 전체 유권자의 110% 정도의 투표용지를 인쇄하겠다며 지자체들로부터 예산을 받았다. 인쇄 단가 상승과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해 여분의 투표지를 인쇄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정작 중앙선관위는 각 지역에 선거인 수의 50%를 하한선으로 인쇄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이는 이전 대선 70%, 지선 60% 수준이던 하한선 기준보다도 10%포인트나 낮은 수치다.

미사용 예산을 지자체에 반납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왜 110% 예산을 받아놓고 50%만 제작했는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더구나 선거 전 실시한 '유권자 의식 조사'에서 응답자의 73.6%가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답한 결과를 받아 놓고도 이런 행정을 한 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는 최근 세 차례 지방선거 조사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치였다. 그러고도 '높은 투표율을 예상 못 했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용지 부족 사태는 애초 알려진 것보다 규모도 컸다. 선관위에 따르면 서울 33곳뿐 아니라 인천 6곳, 대구 4곳, 부산 3곳 등 전국 50곳이나 됐다. 이 중 22곳은 투표가 중단됐다가 재개됐다. 이에 반발한 시민들이 잠실7동 제2투표소를 봉쇄하자 경찰은 기동대 18개 부대 1천 명을 투입해 시위대를 강제로 끌어내는 등 대규모 공권력을 투입, 빈축(嚬蹙)을 사기도 했다. 서울대·고려대·경북대 등 전국 주요 대학에도 '참정권을 짓밟고 대의민주주의의 기반을 흔들었다'는 등 선관위 규탄 대자보와 성명, 게시글이 잇따랐다. 헌법재판소엔 참정권 침해 헌법소원도 접수됐다.

국민의힘은 국정조사와 특검을 촉구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선관위 개혁 기구 구성 등을 검토 중이다. 한동훈 의원은 선관위를 감사원 직무감찰 대상에 포함하는 '감사원법 개정안'을 1호 법안으로 발의(發議)하겠다고 했다. 선관위도 외부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려 조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선관위가 구성한 위원회를 믿을 국민은 없다. 선관위는 스스로 조사하고 결과를 내놓을 자격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