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는 최근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석유 전쟁을 벌이면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고급휘발유 가격이 경유보다 리터당 더 낮게 형성되는 기형적인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4년째 이어지고 있고, 가자지구는 연일 폭격으로 아수라장이다. 코스피는 8천 선을 넘기고 하이닉스 주식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삼성 노조 파업 예고 사태로 역대 최대치의 성과급을 푼다고들 하지만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정부는 치솟는 달걀값을 잡기 위해 분주하고, 환율과 물가는 서민들의 삶을 압박하고 있다. K-코스피 호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체감경기는 팍팍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시대를 LG아트센터와 국립극단이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상반기 국내 대표 제작극장들이 나란히 체홉의 <바냐 아저씨>를 무대에 올리며 '반야 특수'를 누렸다. LG아트센터는 바냐 역의 이서진, 소냐 역의 고아성을 축으로 한 손상규 연출의 <바냐 삼촌>'을 선보였고, 국립극단은 조광화 번안·연출의 <반야 아재>를 조성하, 심은경을 중심으로 선보였다. 19세기 말에 쓰인 체홉의 바냐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인물이나 다름이 없다.
누군가에게는 형처럼, 동생처럼, 직장동료로 공감할 수 있는 극 중 인물이다. 가족을 위해, 조직을 위해, 누군가의 성공을 위해 시간과 열정을 바치며 달려왔지만, 돌아보면 결혼도 못 하고, 사랑은 실패한 채 삶은 뒤로 밀려나 있었던 사람, 열심히 견디며 달려왔어도 기대만큼 나아지지 않았다는 허탈감과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이 바냐에 담겨 있다.
한때는 내 집 마련을 꿈꾸며 직장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치솟는 집값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직장인일 수도 있고, 취업과 생존 경쟁에 밀려 결혼과 사랑을 포기한 청년일 수도 있다. 정년을 앞두고 자신이 평생 쌓아온 것이 무엇인지 허망하게 돌아보는 중년일 수도 있다. 체홉의 바냐가 대한민국 땅에서 '위로'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소냐의 마지막 대사인 "삼촌, 울어? 삼촌은 평생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지? … 조금만 더 버티자."란 대사가 위로의 전류가 되었을 것이고, 이서진과 고아성, 배우들의 연기가 불안한 시대에 '연고제'가 된 것만은 사실이다. LG아트센터의 <바냐 삼촌>은 과도한 해석보다는 삶이 불안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시대일수록 이를 악물고 하루를 견뎌내며 살아가야 하는 인생을 체홉식 웃음과 위로로 정갈하게 다가선 작품이 됐다.
LG아트센터의 <바냐 삼촌>을 대상 작품으로 하는 한국연극평론가협회의 '2026 봄 비평 워크숍'에서는 예비 비평가들의 다양한 시각도 쏟아졌다. "손상규 연출의 무대는 초반부 삶의 무력함을 압도하는 거대한 공간으로 기능하다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거실 공간으로 축소되면서 두 인물이 삶을 견디고 극복하려는 희망의 메시지를 드러낸다"라는 관점도 있었다.
이서진의 '연기하는 것 같지 않은 연기'가 원작 속 바냐의 인물 구조와는 거리감이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대체로 <바냐 삼촌> 성적표는 우수하다. 인물의 외형을 굳이 가공하거나 꾸미지 않았던 이서진, 고아성의 연기가 극 중 인물들의 감정과 삶에 대한 공감을 끌어냈다고 생각한다. 다른 배우들의 캐릭터도 유연했다. 연기, 배우, 스타 캐스팅, 대중적 작품성 등 네 박자가 맞아떨어진다. 이만하면 LG아트센터의 <바냐 삼촌>은 연극무대에 데뷔전을 치른 두 배우도, 기획한 LG아트센터도 성공한 셈이다.
연극무대로 돌아온 조광화 연출의 <반야 아재>는 1939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체홉의 바냐를 식민지 조선의 현실로 이식하면서, 이씨왕조(李氏王朝)가 무너지고 식민지 근대가 강압적으로 밀려오던 조선인들의 상실과 불안을 담아낸다. 반야가 살아가는 가옥은 120여 년 전인 1814년 순조(純祖) 시대에 지어진 낡은, 한옥이다. 조광화는 이 공간을 통해 무너진 국가와 분열의 시대, 타협하는 지식인의 모순, 인생의 허무와 삶의 성찰을 사유하게 만든다.
근원적인 무대의 깊이와 번안의 넓이가 확장된 느낌이고, 대본에 깨알처럼 달린 번안 대본의 주석들은 고증 차원을 넘어선다. 언어와 생활풍속, 유행어, 만요(漫謠), 하이킹 문화, 식민지 시대의 사회적 배경 등을 세심하게 설명해 놓은 것만으로도 19세기 말 러시아 농촌사회를 배경으로 한 체홉의 원작을 1930년대 말 식민지 조선으로 옮겨온 시공간과 인물들의 설정은 번안극이면서도 조광화의 창작극처럼 읽힌다. 식민지 조선의 역사성과 모던한 생활, 불교적 사유를 하게 하는 설정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연민들이 묶여 조광화 특유의 해학과 철학으로 쌓여 있다.
1990년대 한국 사회 세기말 시대에 올려진 <철안붓다>가 조광화 연출의 불교적 세계관과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 삶과 죽음, 욕망과 깨달음의 문제를 다루었다면, <반야 아재>는 절간 반야사(般若寺)에서 애국 계몽운동을 하기 위해 수행하며 법명(法名) '반야'를 받았던 박이보(조성하 분)를 조광화는 민족과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고민했던 청년 지식인으로 설정하며 체홉의 바냐를 1939년 식민지 조선으로 소환한다.
1939년의 시공간은 전쟁과 세계 경제의 불안, AI와 인공지능으로 급회전하는 기술 변화와 심화하는 양극화 속에서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높은 집값과 불안정한 일자리, 치열한 경쟁 속에서 결혼과 출산마저 포기한 청년세대, 평생 일했지만,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중장년층의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바냐의 모습이다.
조광화의 반야 아재가 살아가는 집은 충북 영동 황간면에 있는 125년 된 한옥이 배경이다. 연못이 흐르고, 누마루와 정자, 그 뒤편으로는 일본식 정미소가 보인다. 무대 공간의 여백을 주면서도 한 폭의 수채화 같다. 만요(漫謠)의 설정은 식민지 조선의 애환이면서도 웃음과 슬픔이 교차하는 체홉식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으면서도 우울하다.
반야(박이보, 조성하 분)의 조카 서은희(심은경 분)의 마지막 대사는 이렇다. "가슴을 찔러대던 꼬챙이들은 슬그머니 녹아내려 사라지고, 어느 크고 따스한 손이 우릴 보듬어주죠. 그런 날이 올 거라 믿어요. 정말요. 아무렴요. 오고말고요."국립극단 <반야 아재>도 연일 만석이다. 십 년 전에 '바냐'로 분해 절절한 독백을 소화해낸 배우 기주봉은 찔레긴을 대신하는 60대 몰락한 지주 이기진 역을 맡았다. 조광화의 <반야 아재>는 무대구조와 번안이 탁월한 작품이다.
LG아트센터의 <바냐 삼촌>도, 국립극단 <반야 아재>도 두 작품 모두 불안한 시대에 관객들에게 위로의 연극이 되었고, 한편으로 체홉이라는 고전과 연극 자체에 대한 일반 관객들의 관심을 높였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다. 특히 같은 시기 서로 다른 해석으로 무대에 오른 두 편의 체홉은 오늘을 살아가는 또 다른 바냐들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위로와 성찰의 말을 건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굿바이, 바냐.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