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지 감수성은 일상에서 성차별적인 요소를 알아차리는 감지력을 말한다. 2018년부터 쓰기 시작했다는데 말이 참 어렵다. 이거 계도하고 다니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략 이렇다. 우리는 대화중에, 내자를 가리켜 안사람, 집사람이라는 표현을 쓴다. 반대로 남편은 바깥양반이라고 부르는 데 이게 바로 성인지 감수성 위반 사례가 된다. 무조건 배우자라고 써야 한다고 한다.
또 자주 예로 등장하는 게 유모차다. 가운데에 어미 모(母)자를 씀으로써 은연중에 마치 아이의 양육은 여성 담당이라는 무의식적인 인식을 준다. 해서 유모차가 아니라 유아차로 불러야 한다는 얘기다. 슬슬 어지럽고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오랜 시간 굳어진 말투와 언어를 바꾸라고 해서가 아니다. 아예 말을 말라는 얘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말난 김에 그럼 유아차에서 이 차(車)는 정당하게 쓰이고 있는가. 도로교통법 제 2조 제 17호에 따르면 차는 '도로에서 운전되는 모든 교통수단'을 말한다. 도로를 운행하는 유모차(꿋꿋하게 이 표현 버티련다) 보신 적 있는가. 오히려 유모차 끌고 도로 진입했다가는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유모차는 차가 아닌 것이다.
그 외에도 처녀작, 효자 종목 같은 단어들이 자주 도마에 오른다. 첫 작품, 효도종목이라고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어를 다 바꾸자는 말로 들린다. 이럴 경우 피해를 보는 단어들도 있다. 모성애가 그것이다. 아마도 부모애로 바꾸어야 한다고 할 것 같은데 부모애에는 모성애가 가진 아름다움과 감동과 절박함이 완전히 휘발되고 없다.
그저 자녀를 담담하게 바라보는 건조한 시각만 남게 된다. 새로운 조어도 필요하다. 부전자전 대신 모전여전 혹은 부모전자녀전이라고 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왜 북한의 가슴띠, 살물결 같은 단어가 떠오르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느낌은 그렇다.
◇스타벅스 사태와 5.18 인지 감수성 등장 불안감
최근 배재고 스타벅스 사태를 보면서 이러다가는 '5.18인지 감수성'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지 감수성의 또 다른 문제가 그 정의와 범위가 모호하다는 것인데 가령 5.18을 두고 "광주 사람들 참 대단해" 말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5.18인지 감수성 부족이다.
어미를 올리고 내리는 억양에 따라 슬쩍 비꼬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라도 사람에게 "5월인데 고향 안 가?" 라고 물어도 인지 감수성 위반이 될 수 있다. 마치 광주의 도시절(都市節)처럼 5.18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에 지역 차별이라는 뉘앙스가 들어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 5.18 영화를 보다가 웃어도 인지 감수성 부족이다. 5.18 행사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안 따라 불러도 인지 감수성 부족이다. 이러다가는 소급해서 5.18 전날 룸 가라오케에서 여성들 옆에 끼고 노래를 불렀어도 감수성 부족이라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다. 하여간 일어날 수 있는 경우를 들다보면 끝도 없다.
◇사고를 막기 위해 광주를 배제하는 최악의 시나리오
계속 그런 식으로 가면 결국 '광주'라는 단어 자체를 입 밖으로 내기 꺼려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범위와 정의가 불투명하니 광주를 언급하는 모든 말이 조심스러워진다. 가령 무단 횡단하는 충청도 사람에게 "뭐여? 다 산 겨?" 하면 조크지만 전라도 사람에게 같은 말을 하면 5.18 연상 모욕적인 말로 들릴 수 있다.
왜? 듣는 사람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인사 담당자라면 어떨까. 이 경우 인사 담당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아예 그 지역 사람을 배제하는 것이다. 그 편이 들여놨다가 대형사고 터지는 것보다 100배 낫다. 광주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
◇배재고 스타벅스 사태에서 '어른' 광주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지난 6일 교복을 입고 버스에서 내린 배재고 야구부 학생 선수 전원과 학부모, 교사 등 80여 명은 광주일고 학생 선수 등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이규연 광주일고 교장은 "배재고 학생들 고개 들어요. 다음에 저희 일고 학생들 만날 때 정말 당당하게 서로 있는 기량 마음껏 펼치면서 멋진 승부를 펼쳐주는 것, 그것이 여러분이 용서를 구하는 가장 멋진 모습"이라며 쿨하게 사과를 받아들였다. 이런 상식적인 모습조차 미담이 되니 폐해가 얼마나 크고 끔찍할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