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태풍이 불면 돼지도 하늘을 난다. 지금 한국 반도체가 정확히 그 자리에 서 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영업이익 합산이 500조~600조 원이란다. 국가 예산과 맞먹는 숫자다. 주가는 신고가, 성과급은 노사갈등의 뇌관이 됐다. 43년 한국 반도체 역사에 이런 적이 없었다.
그런데 솔직히 물어보자. 이 돈벼락이 실력 때문인가. 작년 이후 한국 메모리 업체들이 신기술을 개발했나. 새 공장을 지었나. 아니다. 가만히 앉아 있었더니 메모리 가격이 5~10배 폭등한 것이다. 2022~2023년 반도체 빙하기에 업체들이 설비투자를 줄인 것이 2년 뒤 공급 절벽으로 터졌고, 거기에 AI 데이터센터 붐이 기름을 부었다. 태풍이 만든 기적이다. 문제는 태풍 뒤에 반드시 고요가 온다는 것이다.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는 순간, 다음 빙하기는 더 깊고 더 차갑다.
요즘 반도체 업계에 묘한 논리가 유행한다.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구조적이라 과거의 메모리 사이클은 이제 유물이 됐다"는 반도체 사이클 무용론이다. 역사가 가르치는 가장 위험한 네 단어가 또 등장했다. "This time is different."
경제학의 기본으로 돌아가자. 돈 되는 곳에 장사꾼이 몰린다. 지금 메모리의 고수익률 덕분에 마이크론은 물론 중국의 CXMT까지 전속력으로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CXMT의 수율이 지금보다 2배만 오르면 지금의 DRAM의 수급 균형은 봄날 얼음처럼 녹는다. 구글은 이미 대규모 증자에 나섰다. 내부 현금흐름으로 투자하던 AI 기업들이 이제 증시 유통자금을 먹고 살아야 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버블의 냄새가 난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인가. 번 것 갈라먹는 데만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번 것보다 더 많이 버는 구조를 설계할 것인가. 두 가지 처방을 제안한다.
첫째, 메모리 구독경제다. 지금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43년 전과 똑같은 비즈니스 모델로 운영 중이다. 메모리를 만들어 판다. 가격 오르면 천당, 내리면 지옥. 이 단순한 구조가 주가를 영원한 롤러코스터로 만든다.
롤스로이스는 제트엔진을 팔지 않는 대신 매출의 70%를 구독경제, 비행 시간당 요금(Power by the Hour)으로 판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어도비는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버리고 월정액 구독으로 전환한 뒤 밸류에이션이 3~5배 뛰었다.
메모리를 파는 것은 땅을 팔아 밥 먹는 것이다. 메모리를 빌려주는 것은 땅을 임대해 영구 수입을 만드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을 3~5년 장기 구독 계약으로 공급한다면 가격이 반 토막 나도 안정적인 현금이 들어온다. 사이클주의 저주에서 블루칩으로 탈출하는 길이 여기에 있다.
둘째, 메모리 상품선물시장 개설이다. 구독경제가 방어 전략이라면 이것은 공격 전략이다. 지금 메모리 가격은 누가 결정 하는가. 이론상 수급이지만 현실에서는 구글·메타 같은 빅테크 구매자들의 협상력이 절대적이다. 원유를 파는 나라가 OPEC을 만들었다. 철광석 선물은 중국 다롄 상품거래소가, 구리 선물은 런던 금속거래소(LME)가 글로벌 가격을 좌우한다.
한국거래소(KRX)에 메모리 선물시장을 개설해 가격결정권을 빅테크로부터 시장으로 가져오면, 다음 빙하기에 삼성·SK하이닉스가 혼자 가격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가격을 방어한다. 서울이 메모리의 LME가 되는 날, 한국 반도체의 가격결정권이 완성된다.
물론 제품 표준화, 공정거래법상 담합 우려, 빅테크의 반발이라는 장벽이 있다. 그러나 POSCO가 제철소를 세울 때도 다들 불가능하다고 했다. 모든 혁신은 불가능해 보일 때 시작됐다.
43년 반도체 역사에 처음 온 돈벼락이다. 즐기되 취하면 다친다. 2022~2023년 빙하기가 오늘의 황금기를 만들었듯, 지금의 결정이 2028년을 결정한다. 600조를 버는 것보다, 600조를 버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위대하다. 다음 호황기에 6,000조를 버는 나라가 되는 조건은 지금 이 황금기에 어떤 제도를 설계하느냐에 달렸다. 한국 반도체 태풍이 멈추기 전에 우산을 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