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 포스텍 교수
올해 들어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얼마 전 판문점 탐방을 할 기회를 얻었다. 비록 남북 채널이 닫힌지 오래지만 회담이 열리던 장소라도 가서 현장회의를 해야 아이디어가 생기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한 결과였다. 아침에 정부청사에서 출발하여 판문점으로 올라가기 위해 임진각 안내소 집결지에 모였다. 그런데 미군 방문팀이 먼저 올라가 있으니 그들이 내려온 후에 갈수 있다고 하여 1시간을 기다렸다. 의아했다. 군용버스로 갈아타고 올라가는 동안에도 버스 안에서 하차할 수 없어서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멀찌감치 구경했고, 도착하자 바로 '자유의 집' 4층 전망대로 올라갔다. 4·27회담 시 두 정상이 환담했던 도보다리와 기념식수도 방문할 수 없었다. 정작 판문점 회담이 열리던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은 들어가지도 못했다.
황당했다. 자유의 집이라 칭하면서 전혀 자유가 없었다. 곳곳에 유엔사 소속 미군 보초가 마네킹처럼 총을 들고 서 있었다. 알고 보니 2023년 미군 병사 트레비스 킹이 무단 월북한 사건 이후로 일반인들의 판문점 방문이 금지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방문단도 통일부에서 유엔사에 특별 요청을 하여 어렵게 성사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미군 방문단들과 왜 못 섞이게 했을까? 설마 그들은 자유의 집 근처를 자유롭게 다니며 탐방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평양과기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 우리는 종종 북쪽에 속한 판문각을 방문했고 애잔하게 JSA 분단선 건너 남쪽의 자유의 집을 바라보곤 했었다. 대학의 국제 컨퍼런스나 큰 행사가 끝나면 으레 금강산과 판문점 관광을 하는 것이 정례 코스였다. 해외동포 학자들도 있었지만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과 심지어 노벨상 수상자들과 우주인까지 평양과기대에 들려 특강을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들과 함께 공원처럼 꾸며놓은 판문점 일경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까지 들어가서 마치 남북의 대표단이나 된 듯이 서로 마주보고 악수하며 사진을 찍던 장면도 떠올랐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사인을 했던 조인장 건물에 들어가서 역사적 현장을 재현하는 북측 안내 장교의 우스꽝스러운 설명이 생각난다. "미국 클라크 사령관은 겁을 먹고 조인장에 오지도 못하고 줄행랑을 치고 달아났지 뭐입니까?" 북측은 판문점을 마치 관광지처럼 개방하여 온갖 국적 사람들이 그 장교를 따라다녔고, 함께 갔던 미국인들조차 그의 코믹한 설명을 들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마치 유명 스타처럼 관광객들과 자연스런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개성시에 들려 15첩 반상 고급진 음식을 맛보고, 선죽교를 지나 고려성균관 대학을 방문하고 송악산 관음사에 들렸다가 시원한 박연폭포 연못에서 땀을 식히곤 했다. 그때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올랐던 것이다. 우리 측 판문점에는 왜 자유가 없는가?
너무나 허무하게 끝나버린 판문점 탐방 후에 우리의 실망스런 표정을 읽은 통일부 관계자들이 근처에 통일부에서 관리하는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 들렸다가 가자고 제안했다. 정말 아름답게 지어놓은 기념관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를 안내하며 10만 납북자 가족의 아픈 역사를 설명해 주는 여자 해설사(도슨트)가 얼마나 옹골진지 다들 얼빠진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 설명을 듣다보니, 전쟁을 일으키고 납북 만행을 저지른 북한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과 분노가 일어나도록 철저히 안보교육적 측면에서 기획되어 있는 전시관임을 알 수 있었다. 연인원 방문객이 5만명에 이른다는데, 과연 이런 전시관을 통일부에서 운영하는 것이 맞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분단의식 강화는 이제는 없어져야할 냉전의 유물이 아닌가? 통일부 관계자들은 탈냉전적 전시관으로 바꾸고 싶어도 납북 유가족의 아픔 때문에 손을 대기가 힘들다고 했다.
나는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1952년 10월에 만들어졌다는 10만 납북자 명부책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뚱했다. 한창 전쟁이 벌어지던 그때는 대한민국 군경에 의해 보도연맹 양민학살이 진행되었는데, 이 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면 남아있는 가족이 어떤 고초를 당할지도 모르는 시절이 아니었던가? 함께 갔던 어느 교수가 질문했다. "납북인지 월북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