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TV조선 고문·영남대 특임교수
대구시민들은 이번 지방선거가 매우 곤혹스러울 것이다. 이번엔 회초리를 들려고 했는데 그게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선출 과정에서 파열음이 났을 땐 이번만은 꼭 매운맛을 보여줘야 한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후보가 확정되고 이재명 대통령의 공소 취소 특검이 공론화되면서 민심의 물길이 바뀌었다. 아무리 혼내는 게 급해도 공소 취소를 받아들일 순 없지 않은가? 국민의힘이 전국적으로 수세에 몰리며 보수의 심장마저 내줄 수 없다는 자존심도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막대기만 꼽아도 뽑아주면 지역이 낙후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아무리 나쁜 상품을 제공해도 소비자가 군소리 한마디 없이 계속 구매하면 왜 품질 개선에 애쓰겠나? 경제학의 제1법칙이다. 지난해 대구의 1인당 지역내 총생산(GRDP)은 전국 17개 시·도 중 꼴찌였다. 1995년부터 30년째다. 전국 GRDP 실질 성장률은 전년보다 평균 2% 증가했지만, 대구는 -0.8%로 오히려 역성장했다. 낙후가 고질화됐다는 뜻이다. 당연히 광주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무투표 당선 지역이 가장 많은 곳 역시 영호남이다. 1위인 전남·광주 지역은 80명에 달한다. 4년 전보다 17명이나 늘었다. 2위 대구·경북이 70명인데, 지난번보다는 5명 줄었다. 호남의 정치적 독과점이 깊어졌다는 의미다. 영남은 변화의 조짐이 싹트고 있지만 결정적이진 않다. 그러나 경쟁적 선거가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고, 발전도 없다.
변화도 때가 있다. 변할 때 변하지 못하면 망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중국과 조선이 딱 그랬다. 당시 세계는 약육강식이 횡행하는 제국주의 시대였다. 중국은 1840년 아편전쟁을 계기로 반식민지 상태에 떨어졌다. 이후 1992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때까지 무려 150여 년간 침체의 수렁에 빠져있었다. 일본만 1868년 메이지유신을 통해 국가 혁신에 성공했다. 조선은 일본의 급속한 발전에 감명받은 개화파가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켰지만 실패했다. 10년 뒤 일어난 동학 농민 봉기도 수포로 돌아갔다. 위로부터의 혁명,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모두 실패하자 1896년 '옆으로부터의 혁명'이 등장했다. 독립협회의 개혁운동은 한편으로 국민을 계몽하고, 다른 한편으로 정부와 손잡고 나라를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고종의 권력욕 때문에 이조차 실패했다.
조선은 변할 때를 놓쳤다. 그래서 나라가 망했다. 그 결과가 어땠나. 36년간 일제의 노예가 되고, 해방 후 남북이 분단되고, 6·25전쟁으로 형제끼리 총부리를 겨누며 300여만 명이 죽었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선진국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민족의 절반인 북한은 여전히 빵도 자유도 없는 지옥이다. 변하지 못한 죄업이 이렇게 크다. 1884년부터 1905년 을사보호조약 때까지 불과 30여 년에 불과하다. 대구도 지난 30년간 전국 꼴찌다. 조선은 변하려고 온갖 몸부림을 쳤다. 그런데 그런 것도 보기 힘든 대구의 앞날은 어찌 될까?
대구에서 보수 재건의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 한동훈은 부산 북갑으로 갔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이 이곳에 하정우 후보를 보냈다. 하 후보는 대한민국을 AI 3대 강국을 만들 전사다. 왜 그런 인재가 시시한 정치판에서 시간 낭비하고 있나. 한 후보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그만큼 절박하다. 한 후보는 이 대통령의 공소 취소 폭주를 반드시 막겠다고 공언했다. 이제 부산 북갑 선거는 한동훈 대 이재명의 싸움이 됐다.
장동혁 대표도 이 싸움에 가세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부산 북갑 선거에 총동원됐다. 당에서 제명당한 한동훈의 여의도 귀환이 두려운 것이다. 여야 모두 힘을 합쳐 한동훈 낙선에 골몰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 후보는 보수 재건의 깃발을 높이 들고 눈부시게 싸우고 있다. 한 후보가 당선되면 보수 재건의 막이 오르고, 이 대통령의 공소 취소도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보수의 심장도 대구에서 부산으로 옮겨갈 것이다. 대구는 어찌해야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