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지방선거 이후 대구경북의 광역단체장 2명과 기초단체장 31명에게 권한다. 수시로 이언적의 '일강십목소(一綱十目疏)', 이황의 '성학십도(聖學十圖)', 이휘일-이현일의 '홍범연의(洪範衍義)'를 정독하시길. 모두 국역이 되어 있으니 쉽게 읽을 수 있다. 앞선 칼럼에서 '일강십목소'와 '성학십도'에 대해선 논의한 바 있는 만큼, 이번엔 '홍범연의'를 소개하고자 한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 존재 이휘일과 갈암 이현일 형제의 '홍범연의'는 조선 최고의 경세서이자 제왕학이다. 나아가 고려와 조선의 제왕학 교과서였던 오긍의 '정관정요(貞觀政要)'나 진덕수의 '대학연의(大學衍義)'보다 훨씬 심오하고 실용적이다.
순조 때 수난을 겪지 않고 국정에 반영됐다면, 조선 역사가 달라질 수 있었을 터. 참으로 아쉽다. 조선왕조 '순조실록' 13권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기사년의 흉도(凶徒) 이현일의 문집을 간행한 우두머리를 관찰사로 하여금 엄히 형벌한 다음 섬으로 귀양보내고, 흉서(凶書)는 거두어 불태우라고 명하였다." 숙종 때 이조판서였던 이현일의 '갈암집'이 금서 취급을 받았던 것. 일종의 분서(焚書) 사건이었다. 자연 '홍범연의'도 간행되지 못했고, 간행 이후에도 주목을 받지 못했다. 망국의 징조가 아니면, 과연 그 무엇이겠는가.
'洪範'은 동양고전 '서경(書經)'에 수록된 내용으로 모두 65자에 불과하다. 개념 정도만 소개돼 있는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실행 내용이 없다. 그래서 존재와 갈암은 이를 보다 자세히 풀이하고 내용을 덧붙여 썼다. '홍범연의'가 44만여 글자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 된 배경이다.
즉, 존재와 갈암이 "나라가 큰 병을 앓고 있다"며 '홍범구주'의 의미와 체계를 조선 실정에 맞게 재해석, 완벽하게 주석을 하다 보니 책의 분량이 200자 원고지 2,234장이 된 것이다. 1652년 존재가 '홍범연의' 작성을 시작했고, 1686년 갈암이 초고를 완성했다. 이어 갈암의 둘째 아들이자 존재의 양자인 이의가 교정을 봤다. 후대 밀암 이재와 대산 이상정도 교정을 봤다. 그리고 마침내 1863년 '홍범연의'는 완성본으로 간행됐다. 212년 만이다.
'홍범연의'가 오늘에도 주목되는 것은 '팔정(八政:여덟 가지 정사)' 편의 권3의 '식(食)', 권4의 '화(貨)', 권13의 사공(司空上) 조가 주는 교훈이 크기 때문이다. 원래 '서경'에서 '식'은 먹는 것을 해결하는 것이요, '화'는 재물을 잘 다스리는 것이요, '사공'은 땅과 백성이 사는 곳을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식'조에선 "먹을 것을 넉넉하게 하는 방법은 또한 농사에 힘쓰고 씀씀이를 절약하며, 백성을 부리는 것을 때에 맞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했다. 식량비축과 수리공사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화' 조에선 "백성들의 생활을 넉넉하게 하는 것은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헤아려서 재화를 유통하게 하여 이로움을 베풀어서 백성들과 더불어 이익을 두고 다투지 않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화폐를 통해 물가안정을 이뤄 백성들의 의식을 풍족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홍범연의'의 '팔정'은 백성들의 삶을 보장하는 균분(均分)과 항산(恒産) 제도가 담겨 있는 경제학이요 행정학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오늘의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맞지 않는 면이 많다. 하지만 '팔정'에는 영남 정신의 3대 축을 이루는 '호국·부국·애민(護國·富國·愛民)' 정신이 담겨 있는 만큼,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지자체 단체장들이 '팔정'을 정독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경북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갈암종택의 사랑채 마루 벽면에 걸려 있는 갈암의 '病中書懷(병중서회)'란 시를 보면 가슴이 먹먹하다. "草草人間世(초초인간세)居然八十年(거연팔십년)生平何所事(생평하소사)要不愧皇天(요불괴황천):풀잎같은 인간 세상/어느덧 팔십 년이 흘렀네/평생 한 일이 무엇이던가/하늘에 부끄럽지 않으려 했네."
'여중군자 장계향'의 둘째 아들로 이황의 학문적 적통을 이은 도학자 갈암은 '명의죄인(名義罪人)'으로 낙인찍혀 사후 200여년간 간적, 역적으로서 취급받았다. 그 후손들과 제자들의 수난도 형용키 어렵다. 그 고난 속에서 갈암과 그 후인들은 오직 불원천불우인(不怨天不尤人,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의 자세로 '제왕의 바른길'을 제시하고, '국가재정과 국방을 튼튼하게' 하고,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200여년 동안 '홍범연의'를 편찬했다. 영남 지도자들은 이제라도 그 '호국·부국·애민' 정신을 이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조한규 미국 캐롤라인대학교 철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