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속으로] 소멸의 시간을 붙잡다…조선희 사진가, 대구서 개인전 개최

입력 2026-05-16 12:2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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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즌 게이즈(Frozen Gaze): 잉여의 시간'
6월 6일까지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조선희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전경. 이연정 기자
조선희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전경. 이연정 기자
조선희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전경. 이연정 기자
조선희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전경. 이연정 기자
조선희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전경. 이연정 기자
조선희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전경. 이연정 기자
조선희 사진가가 작품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연정 기자
조선희 사진가가 작품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연정 기자

그의 작품을 보기 전, 미국의 미술 비평가이자 역사학자인 할 포스터가 제시한 '외상(外傷)적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한 번 외상의 충격을 입은 이는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도 비슷한 상황을 다시 겪는 순간, 무의식에 남은 외상의 충격이 다시 발현된다는 것. 몇몇의 예술가는 그에 그치지 않고 트라우마적 반복을 통한 결과물을 내놓으며, 충격에 익숙해지고 무뎌지는 과정을 겪게된다는 게 할 포스터의 얘기다.

조선희 사진가의 모든 작업은 죽음과 맞닿아있다. 14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부터 그에게 죽음은 평생의 화두가 됐다.

깊은 고민은 그를 죽음과 삶의 경계 위에 서게 했다. 그는 자신에게 슬픔을 준 죽음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작업으로 끌어들였다. 다시 가닿을 수 없는 14살의 추운 겨울, 그는 작업을 통해 당시의 기억과 정서를 환기시킨다.

아트스페이스 루모스(대구 남구 이천로 139)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을 채운 건 방음벽 등에 부딪혀 죽거나 로드킬 당한 새들이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몸서리칠 수도 있지만, 시간이 멈춘 얼음 속 마지막 초상과 같은 모습은 의외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그가 처음 이 시리즈를 시작한 건 2019년. 긴 연휴가 끝난 어느 날, 스튜디오로 출근한 그의 앞에 새 한 마리가 바싹 말라 죽어있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묻어주거나 버렸을테지만, 그는 새를 박스에 고이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

"아버지가 너무 빨리 사라져버려서 얘는 좀 늦게 사라지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물과 함께, 사라지는 걸 붙잡고 싶은 욕망을 넣어 새를 얼렸죠. 살아있는 자가 느끼기에 죽음은 슬프고 무섭고 두려운 감정이 앞설 수 있지만, 사실 죽음이 아름다울 수도 있는거잖아요. 그런 것들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조선희 작
조선희 작
조선희 작
조선희 작

그는 바트에 물을 넣고 얼린 새를 세워두고 정면으로 찍는다. 바닥에 놓고 그냥 찍는 것과 뭐가 다르겠나 싶지만, 여기에서 조선희 작품만의 차별점이 보여진다.

그는 "얼음을 세워서 찍으면 눕혀 찍은 사진에 비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죽으면 모두 수평으로 눕는다. 그걸 다시 세워서 죽음과 삶의 경계를 좀 더 천천히 긋고자 한 것"이라고 말했다.

얼음은 실온에 꺼내놓는 순간부터 녹기 시작한다. 작가는 디지털로 개조한 4X5 대형 카메라를 사용해, 최대 30초의 긴 시간을 두고 촬영한다. 녹았다가 다시 얼리는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실제 피가 배어나온 모습도 작품에 담았다.

얼음이 다 녹는 과정을 찍은, 2분 30초 가량의 영상 작업도 전시됐다. 사라짐이 진행되는 순간을 마주하며, 결국 우리가 붙들 수 없는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정수를 쓰냐 냉수를 쓰냐, 섞느냐 등에 따라 얼음의 투명도가 달라요. 수돗물은 좀 불투명하죠. 그 얼음의 상태를 다양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또 보존된 상태 그대로를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얼음 알을 품고 있는 듯한 모습도 우연하게 만들어졌는데, 녹기 전에 빨리 찍으려고 했죠."

전시에서는 유일한 흑백 작품이 눈에 띈다. 대형 한지 인화 작품은 새롭게 선보이는 작업이다. 한지에 프린트한 뒤 화학 약품을 쏟거나 불로 태우고, 구겨서 주름을 만들었다.

그는 "기억의 재편집을 가시화한 것"이라며 "우리의 기억이 흐릿해지거나 구경이 나고, 빛나기도 하는 것을 작품으로 보여주고자 했다"고 했다. 이 작품은 내달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단체전에서 본격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패션계, 광고계에서 주목 받는 스타 사진작가에 이어 순수 사진에서도 작품성을 인정 받고 있는 그는 상업사진과 순수 사진, 사진과 미술의 경계를 두지 않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아티스트가 되고자 부단히 발전해나가고 있다.

"홍익대 예술학과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데, 새로운 것으로 더 확장해나가고싶고, 하고싶은 게 많아서 잠이 안 올 정도예요. 오전 4시에 일어나 혼자 사유하고 학문에 파고드는 시간을 갖죠. 내가 사진을 갖고 표현할 수 있는 게 더욱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 같아 진정한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로지 내가 즐거워서 하는 작업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지 저도 궁금해요."

그의 개인전 '프로즌 게이즈(Frozen Gaze): 잉여의 시간'은 6월 6일까지. 일, 월요일은 휴관한다. 053-766-35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