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스티븐 킹'의 수많은 원작 영화들 중에서 <미저리>는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스티븐 킹 스스로도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을 만큼, 이 영화는 원작의 심리적 공포를 완벽하게 스크린으로 옮겨냈다.
눈 오는 밤, 베스트셀러 작가인 '폴 셸던'은 탈고한 원고를 전하러 가다가 차 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는다. 그리고 그의 열렬한 팬이라고 주장하는 전직 간호사 '애니 윌크스'에 의해 구조된다. 애니는 회복을 돕기 위해 그를 외딴 오두막으로 데려가지만, 폴이 집필한 소설 속에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의 집착은 어두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폴이 탈출 계획을 세우는 동안, 애니는 점점 더 통제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해가며 작가인 그에게 그녀의 뒤틀린 환상에 맞춰 글을 쓰도록 강요한다.
이 영화가 호러의 걸작으로 찬사를 받을 수 있었던 가장 원천은 '캐시 베이츠'가 연기한 애니란 캐릭터의 존재다. 애니는 단순히 잔인한 악당이 아니라, 극도로 친절하고 순수해 보이는 이면 뒤에 예측 불가능한 폭력성을 숨긴 예측 불허의 실존적 공포를 상징한다.
영화 역사상 가장 소름 끼치는 악역 중 하나로 꼽히는 애니의 가장 큰 무기는 예상과 어긋나게도 그녀의 평범함과 선량함이다. 그녀의 옷차림, 헤어스타일, 그리고 따뜻하고 고풍스러운 집 분위기는 전형적인 시골의 친절한 이웃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간호사라는 직업적 배경은 그녀의 돌봄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부상당한 폴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를 잠시나마 '은인'으로 착각하게 만들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천사 같은 간호사'의 면모는 그녀의 어두운 내면을 가리기 위한 거대한 가면일 뿐이다.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공손한 태도는 자신의 세계관이 조금이라도 부정당하는 순간, 순식간에 폭발적인 분노로 변하기 때문이다.
애니의 악행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 중 하나는 그녀의 종교적 신념과 결벽증적인 도덕성이다. 그녀는 독실한 신자인 척하며 신의 이름을 수시로 거론하지만, 이는 자신의 잔혹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녀는 욕설을 극도로 혐오하며, 폴의 원고에 비속어가 섞여 있다는 이유만으로 격렬한 분노를 터뜨린다. 거룩한 것과 저속한 것을 철저히 구분 짓는 그녀의 이분법적 사고는, 그녀 자신이 정의한 아름다운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폴을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문하는 모순을 낳는다.
심지어 그녀가 폴의 발목을 부러뜨릴 때는 신체적 훼손을 넘어서, 상대방의 탈출 의지와 인간적 존엄을 완전히 꺾어버리겠다는 광기의 소유욕을 보여준다. 그녀에게 있어 폴은 존경하는 작가이기 이전에, 자신의 환상을 충족시켜야만 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과 지옥에서 온 악마의 잔혹함을 동시에 표출하며, '악'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의 가장 친절한 이웃의 얼굴을 하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자신의 뒤틀린 욕망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삶을 파괴하고, 그것을 사랑과 헌신으로 포장하는 악의 전형을 우리는 단지 영화 속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다. 악어의 눈물 속에 감춰진 악의 속셈이 횡행하는 작금의 정치 현실이 영화보다 더 끔찍하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