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부처님오신날 맞아 안동사찰 순례
안동 팔경 품은 비보 사찰 태화산 '서악사'
수몰의 아픔 견딘 왕실 원찰, 길안 선찰사
훈민정음 혜례본 등 기록문화 중심, 광흥사
2026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안동의 대표 사찰 세 곳은 중생의 해탈을 염원한다. 안동의 비보사찰 서악사, 왕실 불교문화의 흔적을 간직한 선찰사, 영남 불교 기록문화의 중심지였던 광흥사다. 천년 세월을 견뎌온 사찰들은 각기 다른 역사와 문화유산을 품고 오늘날까지 안동 정신문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안동 팔경 품은 비보사찰, 태화산 서악사
안동 시가지 서쪽 태화산 기슭에 자리한 서악사는 도심과 가장 가까운 천년고찰 가운데 하나다. 아파트 단지와 맞닿아 있지만 경내에 들어서면 도시의 소음이 사라지고 고요한 산사의 분위기가 펼쳐진다.
서악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로, 안동의 허한 기운을 보완하고 흉한 기운을 막기 위해 세워진 대표적인 비보사찰로 알려져 있다.
'영가지'에는 과거 서악사의 석불이 나쁜 기운을 막고 좋은 기운을 끌어안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굶주린 호랑이 형상의 산세를 누르기 위해 숲과 연못을 조성했던 '비보압승'의 흔적도 전해진다. 현재는 관왕묘 입구의 석조금강역사상 2구가 당시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서악사의 창건은 신라 말 도선국사가 세운 운대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의 사찰은 1748년 벽파 해운 스님의 중창으로 틀을 갖췄다. 극락전은 풍산현 삼백사의 목재를 옮겨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내에는 경북 유형문화유산인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과 조선 후기 불화인 아미타극락회상도가 남아 있다. 특히 서악사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은 '서악사루전일락'이라 불리며 안동 팔경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수몰의 아픔 견딘 왕실 원찰, 길안 선찰사
안동 길안면 천지리 들판에 자리한 선찰사는 소박한 시골 사찰이지만, 조선 왕실 불교문화의 정수를 간직한 곳이다.
신라 시대 창건된 선찰사는 본래 임하현 약산 동쪽 절벽 아래에 있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옛 절터가 수몰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선찰사가 널리 알려진 것은 2023년 목조석가여래좌상이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되면서부터다. 1622년 조성된 이 불상은 조각승 현진 등이 참여해 만든 작품으로, 통통한 얼굴과 다부진 체구가 특징이다. 친근한 미소 속에 17세기 조선 불교조각의 특징이 담겨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복장유물은 학계의 큰 관심을 모았다. 조사 결과 이 불상은 광해군의 왕비 유씨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며 발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병자생왕비유씨명명'이라는 글이 적힌 저고리가 발견되면서 400년 전 왕실 복식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선찰사에는 금선묘 불화도 전한다. 검은 바탕에 금색 선만으로 형상을 표현한 희귀 불화로, 조선 후기 사불산화파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힌다.
◆기록문화의 중심지, 학가산 광흥사
안동 서후면 학가산 자락에 자리한 광흥사는 안동을 대표하는 대찰이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하며, 조선시대에는 왕실 원당이자 영남 지역 불서 간행의 중심 역할을 했다.
조선 전기 광흥사는 450칸 규모의 대사찰로 왕실 어첩과 경전을 봉안한 원당이었다. 또 안동 지역 문인들의 독서처이자 불서를 간행하는 출판 중심지로 기능했다.
1525년 '불정심다라니경', 1527년 '묘법연화경' 등 수많은 불서가 이곳에서 간행되며 영남 불교문화의 맥을 이어갔다.
경내에는 보물인 안동 광흥사 동종과 응진전 석가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등이 남아 있다. 특히 명부전 복장유물 가운데 한글본 '월인석보' 권7·8·21이 발견되면서 광흥사가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중심지였음이 다시 확인됐다.
안동시 관계자는 "세 사찰은 안동 불교문화의 깊이와 역사성을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화려한 장식보다 오랜 시간 축적된 흔적과 이야기가 살아 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선조들의 신앙과 예술, 기록의 가치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