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9일부터 이틀간 안동을 찾는다. 단순한 지방 방문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에서 열리는 한일 정상 간 셔틀 외교다. 역사와 미래가 정면으로 교차하는 상징적 장면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안동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지역 가운데 하나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병 항쟁에서 계몽운동, 임시정부 지원, 광복군 활동까지 항일 독립운동 55년의 흐름 속에 안동은 늘 중심에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일본 총리의 안동 방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과거의 상처를 외면한 채 미래를 말할 수 없고, 그렇다고 과거에만 머문 채 미래를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 한일 관계의 현실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바로 그 두 갈래 길 위에서 열린다.
박갑주 교수가 펴낸 '다카이치 총리 돌풍의 비밀'은 일본 사회 내부의 변화 욕구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장기 침체와 저성장, 인구 감소와 국제질서 변화 속에서 일본은 기존 정치 문법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해법으로 강한 추진력과 대중 소통 능력을 가진 정치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5년 동안 1천 편이 넘는 온라인 칼럼을 직접 써온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국민과 끊임없이 접촉하고,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며,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려 했다는 의미다.
이런 점은 이재명 대통령과도 일정 부분 닮아 있다. 이 대통령 역시 이념보다 현실을 우선하는 실용주의 색채가 강하다. 현장성과 속도, 결과 중심의 정치 스타일 또한 공통점으로 꼽힌다.
물론 양국 지도자의 정치 환경과 철학은 다르다. 그러나 적어도 "국가 생존과 미래 경쟁력을 위해 기존 틀을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는 접점이 존재한다.
결국 이번 안동 회담의 본질은 과거 청산만도, 단순한 경제 협력만도 아니다.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과 일본이 어떤 미래를 함께 설계할 것인가에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심화되고, 공급망과 첨단산업 경쟁이 국가 안보 문제로 연결되는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 양국은 협력을 외면하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다.
특히 지방의 시각에서 보면 이번 정상회담은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수도권 중심 외교에서 벗어나 지방 도시 안동이 국제 외교 무대의 중심이 됐다는 점 자체가 상징적이다.
우리는 이제 '감정적 반일'과 '무조건적 친일'이라는 낡은 프레임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냉정한 국익과 역사 인식을 동시에 갖는 성숙함이 요구된다. 일본의 변화 가능성을 직시하되 경계할 것은 경계하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안동에서 열리는 이번 정상회담은 어쩌면 그런 전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항일 정신의 본향에서 한국과 일본의 정상이 미래를 논의한다는 사실 자체가 역사의 역설이자 시대 변화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회담 그 자체보다 그 이후다. 청년들은 일본과 경쟁하면서도 협력할 준비를 해야 하고, 지방은 국제 교류 역량을 키워야 하며, 정치권은 과거를 정쟁의 소재로만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과 대학, 문화계 역시 한일 협력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역사는 기억하되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안동이 보여준 선비 정신의 현대적 의미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