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평범한 하루였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돌아와 작업실로 들어갔다. 몇 시간 동안 바이올린을 켜고, 점심을 먹고 다시 활을 들었다. 특별한 일도 없던 날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최근 오랜만에 바흐를 다시 깊게 연습하기 시작했다. 악보를 펼치고 천천히 음을 따라가는데, 어느 순간 음악이 단순히 '연주해야 할 작품'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기도문 같았다.
낮은 음은 묵묵히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걸어간다. 그 위로 선율은 조심스럽게 흔들리며 올라가고 내려온다. 서로 다른 음들은 자기 목소리만 내세우지 않은 채 하나의 질서를 만든다. 그 안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경건함이 있었다. 인간의 감정을 넘어서는 어떤 숭고한 고요함. 연주를 하다 보면 가끔 음악이 기술이나 해석 이전의 무엇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이번의 바흐가 내게는 그랬다.
마지막 종지에 이르렀을 때는 문득 오래된 기도의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음악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활을 내려놓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아침마다 로마서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신앙이 깊어서라기보다, 어쩌면 마음 한쪽이 오래전부터 메말라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여러 구절 가운데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의외로 단순했다. "남을 판단하지 말라."
우리는 너무 쉽게 타인을 판단하며 살아간다. 누군가의 행동 몇 장면만 보고 그의 삶 전체를 안다고 믿고, 짧은 말 몇 마디로 사람의 진심을 규정한다. 직접 본 적 없는 이야기가 옮겨지고 덧붙여지면서 어느새 사실처럼 굳어진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 눈으로 확인한 진실보다, 누군가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전한 말을 더 믿는다.
며칠 전 우연히 다시 펼쳐 본 기돈 크레머의 책에서도 비슷한 문장을 읽었다. 그는 예술가를 위한 십계명 가운데 하나로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고 썼다. 특히 "말 옮기기 게임에는 많은 악의가 존재할 수 있다"는 구절이 오래 남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바흐의 음악 속에서는 그런 소음들이 힘을 잃는다. 거기에는 자신을 과시하려는 조급함이 없다. 높은 선율도 혼자 빛나려 하지 않고, 낮은 음도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소리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성부들은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조용히 상대를 받쳐준다. 그리고 바로 그 질서와 절제 속에서, 음악은 더 깊어진다.
바흐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사람에 대해서도 쉽게 말할 수 없어진다.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어떤 음악 앞에서는 결국 말보다 침묵이 더 정직하게 느껴진다.
그날 바흐의 마지막 화음이 사라진 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치 긴 기도가 끝난 뒤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