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김대희 삼일야간학교 교장 "더 이상 배울 사람 없어 학교 문 닫는 게 꿈"

입력 2026-05-13 10: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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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넘게 배움의 등불 밝혀

김대희(가운데) 삼일야간학교 교장이 학교 교무실에서 교사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김대희(가운데) 삼일야간학교 교장이 학교 교무실에서 교사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대구 달서구 감삼동 서남시장 내 상가건물 2층. 시계바늘이 오후 6시 30분을 넘어서자 사람들이 하나 둘 문을 열고 들어선다. 60, 70대로 보이는 이들은 손녀벌 되는 선생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어떤 이는 "날씨가 많이 더워졌다"며 가져온 우뭇가사리 콩국을 선생님께 건넨다. 대구에서 가장 긴 역사를 지닌 성인 문해 교육기관인 삼일야간학교다.

스승의날을 앞둔 지난 6일 삼일야간학교를 찾았다. 1972년 이 학교가 처음 문을 열 때 대학교 신입생 교사였던 김대희(74) 교장은 어느덧 머리가 희끗해진 70대가 됐다. ㈜대구불로탁주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그는 지금도 일주일에 4일 정도를 공장이 있는 경북 청도와 삼일야간학교를 오가며 바쁜 삶을 살고 있다.

김 교장은 "야간학교 교사로 처음 만난 학생들의 열정 가득한 눈빛이 지금도 선하다. 10년 정도만 하자고 시작한 일이 어느덧 54년이 흘러버렸다"며 웃었다.

-삼일야간학교는 어떤 곳인가.

▶야간학교는 1960, 70년대 산업화의 격변 속에서 소년공 등 배움의 기회를 놓친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자생적 교육공동체다. 1970~1980년대에는 민주화운동과 결합해 사회의식 향상에도 기여했다. 이후 평생교육법 제정과 검정고시 제도의 정착 등으로 문해 교육과 학력 취득 중심의 교육기관으로 성격이 바뀌어왔다.

1972년 5월 20일 개교한 삼일야간학교는 대구에서 가장 오랜 전통의 성인 문해 교육기관이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대구엔 10여 곳의 야간학교가 있었지만 지금은 저희 학교를 포함해 두세 곳 정도 있는 것으로 안다.

삼일야간학교는 한글 기초반부터 고교 졸업 검정고시반까지 4개반을 운영한다. 각 반별 인원은 10명 내외 정도다. 현재 45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고 대학생과 직장인 자원봉사자 18명이 교사로 활동한다.

김대희 삼일야간학교 교장이 수업에 앞서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도훈 기자
김대희 삼일야간학교 교장이 수업에 앞서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도훈 기자

-1972년 대학 신입생 시절 교사로 인연을 맺은 이후 54년 동안 삼일야간학교를 지켜 온 산증인이다.

▶1972년 대학 신입생 때 시작한 게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처음엔 "10년 정도 지나면 이런 시설이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는 말에 친구들과 10년 정도만 해보자며 자원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도 배우려는 사람이 꾸준히 이어지는데, 도저히 그만둘 수 없었다. 1970년대 후반쯤부터는 학교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게 됐다. 교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교무과장, 학생과장, 교감 등의 직책을 맡아 학교 살림을 꾸렸다.

주위의 명망 있는 분들께 교장으로 이름만 올려달라고 요청을 해봐도 쉽지 않았다. 학교 재정에 보탬이 돼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교장이 없다보니 대외적인 활동을 할 때면 늘 어려움이 따랐다. "대표자가 와야지 왜 자꾸 당신이 오느냐"고 핀잔을 들을 때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교장을 맡게 됐는데, 1987년의 일이다.

-학교 살림은 어떻게 꾸려지나.

▶저희 학교는 학생들에게 교육비를 받지 않는다. 교사도 모두 자원봉사자다.

현재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 공모신청을 해서 받는 지원금과 검정고시반 운영으로 받는 예산을 합하면 2천400만원 정도가 된다. 과거에 비하면 감사한 일이지만 연간 운영비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금액이다. 제가 1년에 1천만원 정도를 보태고 나머지는 시민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후원금은 1구좌 5천원씩, 1인 2만원을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최근엔 가깝게 지내는 후배 5명이 도움을 주고 있다. 교무실에 있는 복사기도 그들 덕분에 마련한 거다. 우리 선생님들도 매달 5천원씩 후원금을 내고 교사로 봉사활동을 한다.

과거엔 교사들이 방학 때 건설현장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돈을 모아 학교 운영비에 보태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의 정성과 시간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들을 바꾸는 기적을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

김대희 삼일야간학교 교장이
김대희 삼일야간학교 교장이 "야간학교 교사로 처음 만난 학생들의 열정 가득한 눈빛이 지금도 선하다. 10년 정도만 하자고 시작한 일이 어느덧 54년이 흘러버렸다"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김도훈 기자

-포기하고 싶었을 때도 있었을 텐데.

▶돌이켜보면 10년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생활의 일부가 돼버린 것 같다. 직장인들이 퇴근 후에 친구를 만나서 술 먹는 게 일상인 것처럼 말이다. 사실 대학 졸업 직후 신입사원 시절엔 평일에 학교 나오는 일이 쉽진 않았다. 그렇다고 그만두고 싶진 않았다. 평일 대신 토요일 오후에 나와서 수업을 하는 식으로 교사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때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거나 교사를 구하기 힘들 때는 그만둘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럴때면 선생님들은 늘 이런 얘기를 했다. 이런 학교는 꼭 있어야 한다고. 결국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교육을 향한 교사들의 순수한 열정과 배움을 포기하지 않은 만학도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교사들의 열정이 참 대단한 것 같다.

▶오래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지금은 야간학교 학생 대다수가 만학도지만, 돈을 벌기 위해 학업을 포기한 청소년들이 많았던 1980년 전후의 일이다. 학생들의 토요일 수업을 위해 이들이 다니는 공장을 선생님들이 직접 찾아가서 사장님께 "일요일 날 와서 잔업을 해줄테니 이 아이의 토요일 근무를 빼달라"고 사정을 하기도 했다. 때론 수업이 없는 선생님들이 토요일 날 공장에 가서 대신 일은 해준 경우도 있었다.

선생님들의 열정은 지금도 여전하다. 18명의 선생님 중 절반 정도는 직장인, 나머지는 대학생이다. 대학생 때 교사를 시작해 직장인이 돼서까지 교사 생활을 이어가는 선생님도 많다.

선생님 한분이 매주 1차례 수업을 하는데, 여기에다 당직 2번, 교사회의 1번을 포함하면 기본적으로 매월 7일 정도를 근무한다. 여기에다 검정고시를 앞두고 있거나 시화전 등의 행사를 포함하면 많게는 10일 정도 출근해야할 경우도 생긴다. 게다가 선생님이 그만두거나 수업이 펑크가 날 경우 고참 선생님은 그것까지 챙겨야하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16년차 선생님 한분은 요즘 주 4일을 나오고 있다. 지금도 근무하는 선생님 한 분은 몇 년 전엔 KTX로 울산과 대구를 오가며 수업을 하기도 했다. 대학생 선생님 대다수는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평일 시간을 쪼개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이런 선생님들이 있기에 이렇게 학교가 잘 유지되고 있다. 늘 감사한 마음이다.

김대희 삼일야간학교 교장이 학교 교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김대희 삼일야간학교 교장이 학교 교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지금까지 배출한 졸업생도 상당할 것 같다.

▶졸업생은 5천명쯤 되지 않을까 싶다. 10여 년 전부터는 학교를 마치고 대학 진학도 많이 한다. 학교 졸업생 가운데 대학 졸업자가 80명쯤 되고 18명 정도가 재학 중이다.

처음엔 학생들이 대학 진학에 대해 겁을 많이 냈다. 그무렵엔 제가 많이 독려를 했다. 제가 쉰이 넘은 나이에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것도 학생들에게 배움은 언제든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졸업생들 중엔 영문과에 진학한 70대도 있다. 중학교 과정부터 시작한 분이셨는데 학교에 다닐 때도 영어 성적이 좋았다. 시험을 치면 보통 90점 이상이었고 100점이 나올 때도 많았다. 결국 2년 전 방송통신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그밖에도 몇몇 졸업생들은 과대표도 하고 교환학생을 다녀오기도 하는 등 다들 즐겁게 대학 생활을 하고 있다.

-남들이 하지 않는 힘든 길을 걸어온 만큼 보람도 클 것 같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을 교육해 대학에 보내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용기를 줄 수 있는 삶을 산 것 같아 감사하다. 저 또한 학생들을 보면서 인생을 배웠다. 그런 점에서 삼일야간학교는 제 삶이자 인생이다.

가끔씩 누군가 삼일야간학교의 최종 목표가 뭐냐고 물을 때면 늘 이렇게 답한다. "더 이상 배울 사람이 없어 학교 문을 닫는 것"이라고. '문맹(文盲)'을 없애는 게 개인적인 소망이다. 제가 살아있을 때 이루지 못한다면 누군가 이 학교를 이어가 그 꿈을 이뤄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