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경제가 성장하면 물가도 오른다. 수요와 공급의 선순환 덕분이다. 성장과 수요가 이끄는 인플레이션은 통화·재정으로 비교적 조절이 가능하다. 그런데 성장이 멈췄는데 물가만 오르는 상황도 생긴다. 바로 스태그플레이션이다. 1·2차 오일쇼크 이후 물가 급등에도 영국 정부는 실업을 우려해 완화적 재정과 임금 억제 정책을 병행했는데 실패로 끝났다. 결국 1976년 영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1980년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외채(外債) 위기 속에 통화 팽창이 이어지며 인플레이션 가속과 성장률 둔화를 겪었다. 물가를 잡기보다 성장을 유지하려 했는데 결국 연간 물가상승률 1천%를 넘는 초인플레이션이 닥쳤고 장기간 침체를 겪었다. '조금만 버티면 회복된다'는 판단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치지 않는다. '아직'이라는 오판 아래에서 서서히 진행된다. 정책은 선택을 미루고, 신호는 엇갈린다. 그리고 선택의 여지가 사라진 순간 뒤늦은 대응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동결은 안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부 이견이 노출됐다는 것은 판단 기준이 흔들린다는 의미다. 물가 안정이 필요한데 방법이 뚜렷하지 않다. 공급 충격 앞에 금리는 무기력하다. 한국은 더 난감(難堪)하다. 에너지는 수입에 의존하고, 금리는 미국 변동에 민감하다. 환율, 한미 금리 격차, 수입물가 상승 구조가 외부 충격을 증폭시킬 수밖에 없다. 물가는 오르는데 체감 경기는 내려간다. 스태그플레이션 경고등이 켜졌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무서운 이유는 나쁜 것들이 동시에 오기 때문이고, 더 무서운 것은 매번 정책 대응이 쉽게 틀려서다. 1970년대에도 물가를 잡으려다 경기를 망치고, 경기를 살리려다 물가를 폭발시켰다. 선택은 더 늦어지고, 대가는 더 커졌다. 현재 그런 단계는 아니지만 조건은 갖춰지고 있다. 유가는 빠르게 움직이고, 금리는 따라가지 못한다. 경제는 그 사이에서 희망과 불안을 저울질한다. 과거 경험은 이런 국면(局面)에서 방향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늘 "아직은 아니다"는 진단과 함께 시작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무도 그 말을 하지 않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