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의 오랜 터널 끝에 빛이 보이는 듯하다. 합계출산율 0.72명으로 인구절벽을 넘어 국가 존폐를 걱정해야 했던 대한민국이었지만, 지난해부터 합계출산율이 14개월 연속 상승 흐름을 이어가며 저출산 국면에 변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올 2월 출생아 수는 2만2천898명, 합계출산율은 0.93명으로 집계되면서 아이 낳겠다는 의지가 살아나는 것인지 조심스러운 희망도 엿보인다. 그러나 의료 현장의 시계는 거꾸로다. 정작 아이 낳을 병원과 아픈 아이를 데려갈 소아·청소년과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5년 사이 산부인과 275곳, 소아청소년과 662곳이 문을 닫았다. 지난해 188명이었던 산부인과 레지던트는 올해 단 1명에 그쳤다.
당장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분만실 뺑뺑이' 사건만 봐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최근 청주의 30대 임신부가 응급 분만 병원을 찾지 못해 부산의 한 종합병원으로 뒤늦게 이송됐으나 결국 29주 된 태아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월 말 대구에서 가 119 신고 4시간 만에 경기 분당에서 수술을 받았으나 쌍둥이 중 한 명이 숨진 지 두 달 만에 또다시 비슷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지난 1일 청주의 한 산부인과에서는 산모의 출혈로 태아의 심박수가 급격히 떨어지는 긴급 상황이 벌어져 인근 상급종합병원 6곳에 이송 가능 여부를 타진했지만, 전문의가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119는 전국 단위 수배로 전환해 전국 41개 의료기관을 수소문한 끝에 산모는 3시간 30분 만에 소방 헬기를 통해 부산까지 이송됐다. 하지만 산모는 무사했으나 태아는 끝내 숨을 거뒀다. 지난 2월 말에도 대구에서 조산(早産) 증세를 보였던 28주 차 쌍둥이 임신부가 대형 병원 7곳으로부터 수용을 거부당하다 신고 4시간 만에 분당서울대병원까지 이송돼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 1명은 태어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저산소증으로 숨졌고, 다른 1명은 뇌 손상을 입어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아야 했다. 재작년 추석 연휴에는 25주 차 임신부가 병원 75곳에 무려 187통의 전화를 돌린 뒤에야 받아주겠다는 산부인과 병원을 찾을 수 있었다. 8시간 반 동안의 응급실 뺑뺑이였다.
지역에서의 필수 의료 공백은 이미 '사망 선고'라 불릴 만큼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 최근 들어 고령 산모와 조기 출산, 다태아(多胎兒) 출산 등 고위험 분만이 늘고 있는데 분만 전문 산과 전문의, 신생아 전문의는 턱없이 부족해진 지 오래다. 2020년 기준 전국 산부인과 전문의 5천900여 명 중 실제 분만을 담당하는 비율은 8~15% 수준인 데다, 특히 고위험 분만을 담당하는 의사는 그중에도 10~20% 수준으로 약 80~120명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저출생 극복을 외치면서 정작 임신부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스템이 불안해서는 안 될 일이다. 장기적으로는 적정 규모의 전문의 확보가 필수적이겠지만 당장 확충이 어렵다면 있는 인력이라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역 단위 '실시간 응급 이송 핫라인'과 광역 네트워크 구축이 시급하다.
필수 의료를 기피하는 의료계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책임에 비해 보상이 낮은 데다, 의료 사고 발생 시 민형사상 책임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한 의료진을 보호하는 형사 처벌 면책(免責) 범위의 현실화에 대해서도 정부는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