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억의 봄, 대구 문학의 숨결을 잇다

입력 2026-05-06 13: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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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진 (사)이상화기념사업회 이사·대구문인협회 부회장

이상진 (사)이상화기념사업회 이사
이상진 (사)이상화기념사업회 이사

대구의 봄은 꽃보다 먼저 기억으로 피어난다. 2026년 4월 25일 오후, 두류공원 인물동산에는 같은 날 생을 마감한 두 문인, 이상화 시인과 현진건 소설가를 기리는 제83주기 합동추념식이 경건하게 거행되었다. 1943년 4월 25일, 나라 잃은 암울한 시대 속에서 펜으로 저항하고 민족의 혼을 지켜냈던 두 거장이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이번 추념식은 (사)이상화기념사업회와 (사)현진건기념사업회가 공동 주최하고, 대구광역시와 대구문화예술진흥원, 대구문인협회를 비롯한 여러 문화기관과 언론의 후원 속에 마련되었다. 행사는 개회선언을 시작으로 헌향과 헌화, 애국가 제창과 묵념으로 이어지며 엄숙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참석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며,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살아낸 두 문인의 삶을 조용히 되새겼다. 필자도 이상화기념사업회 이사, 대구문인협회 부회장의 자격으로 참여하였다.

이어 소개된 이상화 시인의 생애와 작품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시대였다. 1926년 발표된 이 시는 빼앗긴 조국에 대한 통렬한 슬픔과 동시에 반드시 돌아올 희망을 노래한 저항의 언어였다.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물음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던 한 시인의 신앙과도 같은 고백이었다.

곧이어 현진건 소설가의 생애가 조명되고, 「술 권하는 사회」의 낭독이 이어졌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사회의 모순과 인간의 내면을 예리하게 파헤친 문제작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그의 대표작 「빈처」, 「적도」, 「무영탑」에 담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현실 인식은 문학이 시대를 어떻게 증언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두 문인의 작품은 단순한 글을 넘어, 시대를 견디는 정신의 기록이자 민족의 양심이었다.

추념사에 나선 여혁동 이사장, 오철환 이사장, 안윤하 회장, 하청호 관장 등, 여러 문학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두 분의 애국정신과 문학정신을 기렸다. 그들의 말 속에는 단순한 회고를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가 무엇을 계승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짐이 담겨 있었다. 이어 울려 퍼진 테너의 '선구자'와 '비목'은 봄날의 공기를 타고 깊은 울림으로 번졌고, 참석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음악은 말로 다 전하지 못한 감정을 대신 전하며, 두 문인의 삶과 정신을 더욱 또렷하게 되살려냈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이상화 시인의 후손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이는 단순한 혈연의 의미를 넘어, 문학과 정신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과거와 현재가 한 자리에 만나는 순간, 우리는 문학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 생명의 언어임을 느끼게 된다.

대구는 이처럼 깊은 문학적 토양을 지닌 도시다. 이상화와 현진건뿐 아니라 백기만, 이장희 시인 등 수많은 문인들이 이곳에서 숨 쉬며 한국 문학의 한 흐름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 소중한 자산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이제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 그들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이어갈 공간이 필요하다. 대구의 문학사를 한눈에 조망하고 시민과 다음 세대가 함께 체험할 수 있는 대구문학공원 및 복합문화단지 조성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이는 과거를 기념하는 사업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며, 이 도시를 살아가는 문학인들의 사명이기도 하다.

봄은 매년 어김없이 돌아온다. 그러나 기억하지 않는 봄은 스쳐 지나갈 뿐이다. 이상화 시인이 노래했던 그 봄처럼, 우리에게도 희망의 계절은 늘 곁에 와 있다. 다만 그것을 붙잡고 이어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두 문인이 남긴 문학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이어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책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