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교 현장에서 교사에게 과도한 법적 책임을 묻는 판결이 나온 뒤 현장체험 학습이 줄어들자 교사의 '사법 리스크' 문제가 전국민적 이슈로 떠올랐다. 문제 해결 관점에서 국민적 공론화가 된다는 점은 분명히 긍정적이다. 그러나 사법 리스크는 교육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의료 분야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장기간 누적돼 왔다. 의사 과실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의사 책임을 폭넓게 인정하는 판결이 이어지며 의료진의 사법 리스크는 꾸준히 확대돼 왔다. 그 결과 위험도가 높은 진료과나 응급의료 현장을 기피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응급실 뺑뺑이 문제는 의사 수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자격을 갖춘 전문의가 충분히 있음에도 응급실 근무를 선택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145.4% 증가했다. 전국의 응급실 일자리와 비교해도 응급의학과 전문의 숫자가 훨씬 많다. 문제는 의사가 없는 게 아니라 응급실에서 일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자격증은 따 놓고 다른 일을 하거나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응급실을 떠난다.
최근 10년 동안 의사가 업무상 과실치사·치상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형사 사건은 4배 가까이 늘었다. 영국, 독일 등은 의사에 대한 형사 처벌 건이 1년에 1건 정도 있으나 한국은 매년 약 750명씩 업무상 과실로 기소 당한다. 한국의 의사가 더 많은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다. 한국의 의료소송이 "왜 더 좋은 치료를 하지 않았냐"는 식의 결론으로 귀결돼 점점 의사에게 불리해지고 있어서다. 제한된 시간 안에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는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응급실 의사에게 더 불리할 수밖에 없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책임의 범위'에 있다. 교육이든 의료든 본질적으로 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그럼에도 결과를 기준으로 책임을 확대하는 판례가 누적되면 현장은 자연스럽게 위험 회피적 선택을 하게 된다. 현장체험 학습이 사라지고 응급실을 떠나는 의사가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안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다. 그러나 모든 위험을 사전에 제거할 수 없다는 현실 또한 외면해선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사고 발생 이후 '누가 처벌 받을 것인가'가 아니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있다. 교사와 의사가 감당해야 할 법적 책임의 범위가 점점 늘어날수록 우리는 교육의 경험과 생명을 지키는 의료 모두에서 점점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원종현 프리드먼연구원 주임연구원
*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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