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석 한국해운항만학술단체협의회장(계명대 명예교수)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제 해운질서의 근간인 '공해자유의 원칙(freedom of the high seas)'이 위협받고 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 강화를 목적으로 우회 항로를 제공하고, 선박 당 최대 200만 달러에 이르는 통행료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미국은 이란이 요구하는 통행료를 지급하거나 통항 보장을 요청할 경우 제재를 가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히면서, 제3국 선박의 안전 통항을 지원하는 '프로젝트 프리덤(project freedom)'을 가동했다.
공해에서 자유로운 항해와 해양활동을 보장하는 '공해 자유의 원칙'은 해상운송산업의 발달은 물론 국제 무역의 확대를 견인해 온 핵심 규범이다. 그 사상적 뿌리는 17세기 네덜란드 법학자 후고 그로티우스의 '자유해양론(Mare Liberum)'에 있으며, 이후 국제관습법과 조약을 통해 정립되어 왔다. 1958년 '공해에 관한 협약'에서 처음 성문화되었고,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제87조에 반영되면서 국제법의 기본 원칙으로 확립되었다.
'유엔해양법협약'은 외국선박의 통항 권리를 수역의 성격에 따라 자유통항, 무해통항, 통과통항으로 구분한다. 공해나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는 자유통항이 보장되며, 영해에서는 연안국의 평화와 안보를 침해하지 않은 범위에서 무해통항이 허용된다. 통과통항은 협약 제37조에서 규정한 국제항행해협에 적용된다. 호르무즈, 말라카, 대만 해협 등이 이에 해당하며, 이들 해협에서 모든 선박과 항공기가 연속적이고 신속하게 항행할 권리, 즉 통과통항권(right of transit passage)을 보장받는다. 연안국은 이를 중단하거나 통행료를 부과할 수 없다.
현재 글로벌 해상요충지 가운데 통행료가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곳은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 뿐이다. 이는 자연해협이 아닌 인공 수로로서 건설과 유지·보수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한편 흑해와 에게해를 잇는 튀르기예의 보스포루스와 다르다넬스해협은 1936년 '몽트뢰 협약'에 따라 상선의 자유로운 항행을 보장하면서도 군함의 통항은 규제하고 있다. 이 해협의 통항은 무료지만 좁은 해협 특성상 선박의 안전운항에 필요한 도선비, 예인선비, 구조비 등 특정 서비스 비용만 제한적으로 부과된다.
해협 통제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 있다. 17세기 중엽 영국과 네덜란드가 해상무역 주도권을 놓고 벌인 영란전쟁의 핵심은 영국해협의 통항권 통제에 있었다. 당시 유럽 해상무역은 동인도회사를 중심으로 네덜란드가 지배하고 있었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은 1651년 '항해법(Navigation Act)'을 제정해 영국과 식민지 간 교역에 영국 선박만 이용하도록 제한했다. 동시에 영국해협을 통과하는 네덜란드의 상선에 대해 검수권과 관세를 부과했다. 결국 영국은 해협 통항권을 무기로 네덜란드의 무역활동을 제한했고, 유럽 해상무역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은 오늘날 호루무즈 사태에도 적용된다. 국제사회가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통행료 부과를 허용한다면 페르시안 걸프 내 석유 수출국들의 경제적 운명은 이란의 결정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걸프 국가들의 수입 일부가 이란으로 이전되는 차원을 넘어 이란의 지정학적 영향력을 비약적으로 확대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선례의 확산 가능성이다. 남중국해 비롯한 다른 글로벌 해상요충지에서도 유사한 시도가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 '공해의 내해화'를 통해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가속화되면서 군사적 충돌 위험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
경제적 파장 또한 심각하다. 과도한 통행료는 에너지 공급망의 혼란을 초래해 유가와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고, 글로벌 경제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흐름은 국제무역의 구조적 불안정을 심화시키며 나아가 국제무역 질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공해자유의 원칙'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지켜야 할 보편적 규범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료 부과 시도는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세계 경제 안정성과 국제법 질서를 동시에 위협하는 중대한 도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