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보이스피싱 건수 줄어도 피해금액은 확대, '선택과 집중형' 범죄 변모
심리적 지배, 가상자산 등 고도화되는 사이버지능범죄
경찰의 전방위 대응, 개인 '경각심' 필요
"지금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습니다.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구속될 수 있습니다."
올해 2월 대구의 한 원룸에서 40대 남성 A씨는 이 말을 철썩같이 믿고 스스로를 방 안에 가둔 채 일주일 가량을 외부와 연락을 끊고 있었다. 수사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의 지시에 따른 '셀프감금' 상태였다. 그는 수십 년간 모은 자산을 정리해 총 18억원 송금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인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설득에 나서기 전까지 범행을 의심하지 못했다. 해당 사례는 송금 직전 가까스로 피해를 막을 수있었지만, '피싱' 범죄가 점점 조직화, 고도화되면서 지금도 누군가는 범죄의 낚시고리에 걸려있다.
◆건수 줄고, 피해 규모 확대…'선택과 집중' 범죄 변모
보이스피싱 등 피싱 범죄가 단순 사기 수준을 넘어 고도화된 금융범죄로 진화하고 있다. 정부와 경찰의 전방위적인 단속과 예방 활동으로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 자체는 줄어들고 있지만 피해금액은 오히려 늘어나는 이중 구조를 보이고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2019년 3만7천667건에서 2023년 1만8천902건으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그러나 피해액은 같은 기간 6천398억 원에서 4천472억 원으로 줄었다가, 2024년 8천545억 원으로 급증한 데 이어 2025년 9월 기준 9천867억 원까지 치솟았다. 건수는 줄었지만 피해액은 오히려 커지는 '역전 현상'이 뚜렷해진 것이다. 특히 2024년 이후 피해액이 급증한 것은 범죄가 소액 다건형에서 고액 집중형으로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대구경찰청 자료를 보면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2020년 1천3건에서 2023년 465건으로 감소했다. 특히 2023년 100억 원 수준이던 피해액은 2024년 290억 원, 2025년 492억 원으로 급증했다.
◆ 고도화 피싱 범죄…가상자산 '심리적 지배' 결합
피싱범죄가 고액 집중형으로 변화한데는 범죄 방식의 변화와도 맞물린다. 과거에는 불특정 다수에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소액을 빼내는 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특정한 개인을 분석하고 겨냥한 '타겟형 범죄'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최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특별단속 결과에 따르면, 전통적인 전화 사기를 넘어 투자리딩방 사기, 로맨스 스캠, 가상자산 투자 사기 등 신종 스캠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범죄 조직은 유출된 개인정보를 활용해 피해자의 직업, 투자 성향, 가족 관계 등을 분석한 뒤 맞춤형 시나리오를 설계한다. 비상장 주식 상장을 미끼로 수백억 원을 가로채거나, SNS를 통해 해외 거주 외국인으로 사칭하며 친분을 쌓은 뒤 투자를 유도하는 지능적인 수법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수사기관 사칭, 가족 사칭, 투자 유도 등 다양한 수법이 결합되면서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
특히 검찰이나 금융감독원 등 국가기관을 사칭해 피해자를 '심리적 지배(가스라이팅)' 상태로 몰아넣는 행태다. AI 기술을 활용한 딥페이크(Deepfake) 음성 사칭과 원격 제어 앱 설치를 통한 스마트폰 장악 등 '피싱' 범죄는 더더욱 진화 중이다.
경찰대학 치안정책 연구소는 '치안전망2026'을 통해 "경찰 역시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 범죄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통합하고 분석함으로써 보이스피싱에 대응해나가야한다"며 "수사에서 가장 어려운 '음성 기반 동일 화자 식별', '데이터 분석'의 문제를 AI로 수사하는 기술 확보에 나서고 있으며 해당 기술을 전국 수사 실무에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경찰 전방위 대응…"사후 대처보단 예방"
대구경찰청은 피싱범죄 예방을 위한 홍보활동 강화에 나서고 있다.
3일 대구경찰에 따르면 피싱 예방 활동을 전개한 결과, 올해 1분기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가 123건(피해액 63억원)으로 전년 대비 47%(5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대구경찰은 지난해 시민 설문을 통해 '보이스피싱 범죄 근절 및 예방 홍보·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했고 이를 중점 추진과제로 선정해 예방 활동에 나서고 있다.
설문에는 총 6천1명의 시민이 참여해 가장 근절해야할 범죄로 '보이스피싱'을 손 꼽았다.
이에 대구경찰은 지역별 노인종합복지관을 직접 방문해 고령층 대상 범죄 수법과 대처법을 대면 교육하는 한편, 청년층에는 SNS와 디지털 매체를 활용해 신종수법을 신속히 공유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올해는 지금까지 캠페인과 예방 교육 등 총 120회에 걸쳐 홍보및 교육 활동을 추진했다.
특히 피싱범죄 피해 예방을 위해 시민 행동 요령인 '어서 끊자'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캠페인은 공공·금융·수사기관 사칭이나 저금리 대출, 카드 배송 등 모든 의심스러운 전화를 받았을 때 망설임 없이 통화를 종료하는 것이 피해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알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대구경찰은 대구시의 '달구벌미소문자서비스'를 활용, 대구시민 약 7만7천여명에게 피싱 예방 안내 메시지를 매월 발송하고, 대구 지하철 94개 전 역사 전광판에 '어서 끊자' 캠페인 영상과 홍보 문구를 상시 송출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예방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최근 피싱조직은 검찰이나 금융감독원 등 국가기관을 사칭해 피해자가 경찰관조차 불신하게 만드는 '심리적 지배' 상태에 빠뜨리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이에 금융기관과 협력해 고액 현금인출 등 이상 징후 발생 시 즉시 신고하는 핫라인을 구축하고, 지역경찰은 피해자를 직접 대면, 설득하는 등 노력에도 나서고 있다.
실질적인 범죄 예방 성과도 올리고 있다. 지난 16일 검사 사칭 피싱조직에 속아 불안해하던 친구를 대신해 경찰과 상담 후 현장 형사의 신속한 조치로 친구의 퇴직금(1억5천만원)을 전액 보호한 사례도 있는 등 올해 1분기에만 총 63건, 합계 61억원 상당의 피해를 예방했다.
대구경찰 관계자는 "앞으로도 피싱 범죄로부터 안전한 도시를 구현하기 위해 예방 수칙인 '어서 끊자!' 캠페인을 적극 홍보하고, 현장 대응 역량을 한층 강화해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