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우리는 왜 기억하지 못하는가

입력 2026-04-12 1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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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요즘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과 같은 짧은 영상 콘텐츠가 빠르게 일상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나 역시 쉴 때면 아무 생각 없이 화면을 넘기게 된다. 손가락을 한 번 움직이면 다음 장면이 나오고, 또 그다음으로 이어진다. 짧은 영상들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나는 그 흐름을 거의 멈추지 않은 채 따라가게 된다. 특별히 무언가를 보겠다는 의도도 없이,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그런데 어느 순간 멈추게 된다. 꽤 오랜 시간을 본 것 같은데, 정작 무엇을 봤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히 계속 보고 있었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은 거의 없다. 시간을 쓴 것 같은데 남은 것이 없는 느낌, 그때 나는 비로소 '시간을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몸은 쉬고 있었지만 머무른 시간은 없었던 것처럼 느껴지고, 오히려 시간을 흘려보냈다는 불쾌한 감각만이 남는다. 괜찮은 걸까.

이 경험은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은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짧은 영상을 볼 때 우리는 스스로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들어오는 자극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반응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끌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수동적인 집중'에 익숙해질수록, 하나의 흐름을 끝까지 따라가는 능력은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공연장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난다.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음악이 흐르는 동안, 관객들은 자리를 지키고 끝까지 그 시간을 함께한다. 음악은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우리는 그 흐름 안에 자연스럽게 머문다. 선택지는 거의 없다. 그저 지금 흐르고 있는 음악을 따라가는 것뿐이다. 이 단순한 조건이 오히려 깊은 몰입을 만들어 내고, 그 몰입은 기억으로 이어진다. 객석에 앉아 공연을 감상하며 느꼈던 감동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긴 음악은 짧은 자극처럼 즉각적인 반응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하나의 주제가 등장하고, 변형되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통해 서서히 의미를 만든다. 그 시간은 건너뛸 수 없고, 압축할 수도 없다. 그 흐름 안에 머무를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음악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문제는 우리가 긴 음악을 들을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다만, 일상 속에서는 그런 방식의 경험을 만들어 내는 환경이 점점 줄어들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계속 보고 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머물지 않은 경험은 기억으로 남지 않는다. 기억으로 남지 않는 시간은, 결국 우리 삶에서 사라진 것과 다르지 않다.

긴 음악은 다르다. 그 안에서는 머무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따라가는 동안, 우리는 비로소 어떤 감정과 의미를 자신의 것으로 가져오게 된다. 어떤 감정은 끝까지 따라가야만 비로소 우리 안에 남는다. 그리고 그 시간은 우리가 머무르기로 선택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