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강우 시인·소설가
추상표현주의 중에서도 색면추상화의 선구자로 알려진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일견 간단해 보인다. 그의 그림은 주황, 빨강, 검정, 노랑, 파랑, 밤색 등등 원색과 단색으로 칠해진 사각형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경계가 모호한 채 수평과 수직으로 분할된 사각형의 가장자리 여백은 그의 작품이 강고한 도그마나 패러다임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시사한다. 사물의 재현보다는 색면의 기하학적 양식에 치중한 그의 그림을 곧 폭풍이 몰려올 것 같은 우중충하고 흐린 날씨에 빗댈 수도 있겠다.
그의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추상주의 계열의 그림은 특유의 난해성으로 감정이입이 쉽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특이한 현상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45㎝ 거리에서 감상하기를 원했다. 가로세로 2m 안팎의 대형 캔버스 앞으로 바투 다가선 관람객을 멀찍이 떨어진 뒤편에서 보면 어떤 모습일까. 관람객이 그림의 일부인 듯 느껴지지 않을까. 관람객이 미동도 없이 서 있다면 더더욱.
내가 맡은 도서관 문학창작반의 수강들에게 마크 로스코의 그림과 관련한 과제를 냈다. 관람객의 눈물을 설명해 보라는 문제인데 수강생 모두가 그림을 형성한 색상, 명암, 구도 등 그림 자체에 주안점을 두고 접근했다. 예컨대 어두운 색이 던지는 상실감이나 붉은 색이 상기시키는 열정이나 희열, 그리고 층층이 덧쌓은 색감이 던지는 자책감이나 회의감 등.
"단순하게 색을 덧칠한 저런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네요" 예전에 어떤 수강생이 한 말이다. 그림 너머, 그러니까 그림을 보고 눈물짓는 이에게 어떤 사연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도움이 될 거라는 말 정도로 끝냈다. 내심 가다듬었던 말은 이런 것이다. 그림은 단지 웃음과 울음을 꺼내는 데 쓰이는 도구라고. 문학도 마찬가지라고.
마크 로스크의 그림 앞에서 터져 나온 눈물은 필시 가슴에 묻어둔 사무친 감정이 그림의 어떤 요소와 화학반응을 일으킨 때문이다. 그러니 눈물의 주인공은 '감정 친화성'이 강한 사람이다. 감정 친화성. 문학인의 필수조건이 아닐까? 기민한 두뇌로 글을 쓴들 감정 불통이라면 깨알 재미는 몰라도 깊은 울림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니 문학에 뜻이 있는 분들은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보며 스스로를 검증해 보시기 바란다. 전혀 감정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셋 중 하나이다. 마음 아파 본 적 없거나 감정 친화성이 낮거나. 그것도 아니면 주관이 너무 딱딱하거나. 그나저나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눈시울을 젖게 한 적이 있나? 생각하면 눈물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