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정성태]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입력 2026-04-07 13:50:10 수정 2026-04-07 14: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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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태 꾸꿈아트센터 대표

정성태 꾸꿈아트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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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이다. 엊그제가 식목일이었고, 이미 청명과 한식도 지났다. 시간은 쏜살같다. 학창 시절 즐겨 듣던 포크 듀오 '시인과 촌장'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고 한다. '가시나무', '사랑일기', '풍경'은 그 시절의 새벽 공기와 함께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다. 20여 년 만의 공연 소식에 잊고 지내던 시간이 문득 되살아났다. 그들의 노랫말 한 구절이 다시 마음에 머문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시간이 지날수록 의미가 깊어지는 문장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끊임없이 구분하고 서로를 나눈다. 혈액형으로 성격을 설명하고, 몇 개의 알파벳 조합으로 사람을 규정한다. 한방에서는 음양오행의 틀 안에서 체질을 구분한다. 이러한 분류는 복잡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인지적 장치일 것이다. 이름을 붙이고 범주를 설정함으로써 타인을 빠르게 읽고, 관계의 방향을 가늠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분류와 구분이 설명을 넘어 판단의 기준으로 작동하는 순간, 그것은 이해의 도구가 아니라 편견의 틀이 된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유형'이라는 말은 간결하지만, 개인의 시간과 경험, 맥락과 변화 가능성을 지워버린다. 복잡다단한 존재는 단순한 기호로 환원되고, 살아 있는 개인은 박제된 유형으로 치환된다. 경계는 또렷해지지만 판단의 오류도 함께 커진다.

이러한 논리는 역사 속에서 반복됐다. 피부색은 인종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고, 제도는 신분과 계급을 규정하는 장치로 작동했다. 특정 집단을 하나의 속성으로 묶는 순간, 구분은 경계가 되고 경계는 차별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인간은 하나의 틀에 머물지 않는다. 삶은 선형적이지 않고, 경험은 축적되며, 시간은 내면을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한때 어떤 유형으로 설명되던 사람도 다른 국면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인간은 고정된 자아가 아니라 변화 속에서 스스로를 바꾸는 존재다. 결국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간다.

요즘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는 노랫말은 회상을 넘어 하나의 통찰처럼 들린다. 삶은 때로 멀리 돌아가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그 끝에서 마주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선택이 쌓여 형성된 자리다. 그 자리는 타인이 규정한 틀이 아니라, 자기 삶이 만들어낸 자리다.

분류는 필요하다. 그것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다. 사람은 언제나 그보다 더 넓고 깊다. 결국 인간은 제자리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