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태 꾸꿈아트센터 대표
'꼬'라는 이름의 물건이 있었다.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이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애착 대상이었다. 초등학생이 돼서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꼬'는 '꼬질이'에서 앞 글자를 따온 이름이다. 담요의 모서리를 손바닥만 하게 잘라 만든 작은 천 조각. 오래 만지고 닳아 꼬질꼬질해진 모습 그대로 붙인 이름이었다. 아이는 그것을 만지작거리며 잠들었고, 그 작은 조각에 마음을 기대고 있었다.
어느 날, 그 '꼬질이'를 잃어버렸다. 아이는 한동안 상심했고, 집 안에는 묘한 애도의 기운마저 감돌았다. 나는 같은 담요의 다른 모서리를 잘라 비슷한 모양으로 다시 만들어줬다. 촉감도 색도 거의 같았다. 하지만 돌아온 건 짧고 단호한 말이었다. "이건 꼬가 아니야." 같은 물건이었지만, 그것은 더 이상 그 꼬가 아니었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사물에 이름을 부여하는 일이 단순한 명명이 아니라는 것을. 이름은 대상과 맺는 관계의 방식이라는 사실을.
그 아이는 지금도 이름 짓기를 멈추지 않는다. 애완견은 '시끌이', 내가 타는 자동차는 '둥이', 지우개는 '느림보'와 '빠름보'라 부른다. 청소기에는 '봉봉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누군가에게는 유치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름을 붙이고 불러주는 행위는 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이름에는 애정이 스며들고, 기억이 쌓이며, 관심이 머문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자, 그 존재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깨닫는 일이다. 이름 없는 사물이 관계의 대상으로 바뀌는 순간, 그것은 비로소 특별한 존재가 된다.
우리는 수많은 사물과 공간, 사람을 스쳐 지나가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름을 부르고 감정을 나눈 대상만이 오래 남는다. 이름은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이며 관계를 지속시키는 장치다. 때로는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들고, 흩어진 경험을 하나의 질서로 묶어준다.
이름이 붙는 순간 사물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을 담은 존재가 된다. 문화 또한 이러한 이름짓기의 반복 속에서 형성된다. 우리는 도시의 거리와 공간, 사물에 이름을 부여하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의미가 쌓이고 기억이 공유되며 하나의 감정이 축적된다.
이름을 가진 존재는 특별해진다. 그 이름 속에는 함께한 시간과 기억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름을 부여하고 다정하게 불러주는 일. 어쩌면 인간은 이름을 붙이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이름을 부르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