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정두나] 선거에 필요한 레시피 노트

입력 2026-07-2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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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나 기자
정두나 기자

퇴근 후 유일한 낙은 직접 만든 요리를 먹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대접할 만큼의 솜씨는 아니지만 내 입에만 맛있으면 될 일 아닌가. 먹고 싶은 요리의 레시피를 수집해 공부하고, 나만의 개성을 더해 완성한다. 먹기 전 자랑을 위한 사진 촬영도 빼놓을 수 없다. 설거지와 뒤처리까지 할 일이 산더미지만, 유일한 취미를 놓치긴 싫다.

멋들어진 음식 뒤편에는 누덕누덕한 '레시피 노트'가 있다. 천원짜리 공책에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괴발개발 글씨체로 요리법을 수정한다. '유튜브, 블로그에서는 당근을 채소와 함께 넣으라고 함. 직접 해보니 당근을 가장 먼저 넣는 게 나을 듯' '다음 번에는 물 대신 우유를 넣어보기 도전'.

종이를 찢어버리고 새롭게 쓰는 게 더 깔끔하겠지만, 수정을 고집한다. 예전에 어떤 실수를 했는지를 알아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아서다. 여러 개의 요리법을 합쳐 보고, 수차례의 시도와 기록이 쌓인 뒤 비로소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아쉽게도 이 당연한 법칙이 선거에는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 선거는 오지선다 중 단 1개의 답만 고르고, 나머지 선지는 모두 빨간 펜으로 '틀림' 표시를 한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 낙선인은 소리 소문 없이 지워진다. 선거 기간 내내 거리마다 걸려 있던 공약은 철거되고, 온라인에 넘쳐 나던 게시물도 금세 뒤로 밀린다. 다음 선거에 다시 출마하더라도, 사람들은 처음 보는 후보인 양 그를 마주한다.

공약을 후보자의 '버킷리스트'로 보고 미련 없이 지우면 곤란하다. 우리 지역의 출퇴근길이 왜 막히는지, 아이를 맡길 곳이 왜 부족한지, 청년이 왜 떠나는지, 노인이 왜 불편한지에 대한 진단이다. 후보들은 저마다 지역의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해법을 제시해 뒀다.

같은 문제에도 해법은 여러 가지다. 교통난을 해결하는 방법은 도로를 넓히거나 지하철역을 짓는 것만이 아니다. 마을버스를 늘릴 수도 있고, 대중교통 노선을 손보는 방법도 있다. 낙선인의 공약을 살펴보면, 다양한 선택지를 공부할 수 있다.

그 기록은 시간이 쌓일수록 더 큰 의미가 있다. 오래된 공약을 보면 4년 전 지역의 핵심 현안이 무엇인지,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는지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연대기를 참고해 더 나은 공약을 내놓을 수도 있고, 어떤 후보의 공약이 더 좋은지 판단하기도 쉽다.

지역의 문제를 담아낸 기록을 쉽게 버리지 말자. 좋은 레시피가 수많은 메모 끝에 완성되듯 좋은 정책도 축적된 기록 위에서 더 단단해진다. 낙선인과 당선인, 둘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지역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서로 다른 기록이다.

취재하며 씁쓸한 이야기를 들었다. "낙선인의 공약을 살펴보는 일, 정말 중요합니다. 잘 정리해 공개하면 당연히 좋죠. 그런데 솔직히 당선인의 공약조차 제대로 보지 않는 사람이 많잖아요." 기사를 다 쓴 후에도 계속 곱씹게 되는 말이다.

공약보다 사람을, 정책보다 정당을 먼저 보는 문화가 여전히 강하다. 당선인의 공약조차 제대로 검증되지 않는데, 낙선인의 공약에 시선을 돌리자는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을까. 어쩌면 한발 앞선 주문일지도 모른다.

먼저 선거의 무게 추를 공약으로 옮겨와야 한다. 사람을 선택할 때 무엇보다 공약을 먼저 살피는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낙선인의 공약을 지역의 기록으로 남기자는 제안도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더 나은 선택으로 나아가는 선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