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SEC에 ADR 상장 등록신청서 비공개 제출
투자 재원 확보 및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기대
신주 발행 시 기존 주주 지분 희석 논란
SK하이닉스가 미국 증시 문을 다시 두드리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급증하는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선 것인데요. SK하이닉스는 25년 만에 해외 상장도전에 나서면서 '기업가치 재평가'라는 명확한 목표를 내세웠습니다. 시장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옵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4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을 위한 공모 등록신청서를 비공개로 제출했습니다. 올해 연내 미국 증시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공모 규모와 방식, 상장 일정 등 세부 사항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ADR은 국내 주식을 미국 투자자들이 달러로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증서로, 사실상 미국 증시 상장과 같은 효과를 갖습니다. 그동안 국내 증시에 상장된 한국 기업에 투자하기 어려웠던 글로벌 자금이 유입되면서 주가의 구조적 상승 기반이 강화될 수 있습니다.
SK하이닉스가 직접 상장이 아닌 ADR 방식을 택한 건 미국 증시 직접 상장에 따르는 절차와 규제 부담을 완화하는 동시에 기존 주주 보호를 고려한 전략으로 분석됩니다. 직접 상장 시 미국 회계 기준과 공시 체계에 맞춘 추가적인 대응이 필요하고 기업 구조와 내부 통제 시스템 전반을 이에 맞게 정비해야 하는 부담이 뒤따르지만 ADR은 기존 상장 주식을 기반으로 발행되는 만큼 절차적 부담을 상대적으로 줄이면서도 미국 투자자 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SK하이닉스가 해외 증시의 문을 두드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과거 현대전자 시절 LG반도체와 합병 후 늘어나는 부채 해결을 위해 1999년, 2001년 유럽에 글로벌 주식 예탁 증서(GDR) 상장을 했는데요. 당시 회사 부채가 크고, 회계 불투명성 등이 문제가 돼 주가가 폭락하고 머지 않아 사실상 상장 폐지된 바 있습니다.
25년 만의 해외증시 상장 도전 규모는 약 100억~140억달러(약 13조~19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는 미국에 ADR을 상장한 국내 기업 가운데 최대 규모입니다.
SK하이닉스가 ADR 상장을 하는 이유는 자산 확보를 통해 반도체 생산력을 확충하기 위해서입니다.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과 AI 반도체 생산 확대를 위해 막대한 투자를 진행 중입니다. 투자 규모는 당초 100조원대에서 600조원 수준으로 확대됐고, 연간 설비투자도 30조원을 웃돌 전망입니다. 회사는 장기적으로 100조원 이상의 순현금 확보를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메모리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필요한 설비투자가 대폭 증가하고 있다"며 "충분한 현금은 미래 성장을 위한 전략적 자산이자 시장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훌륭한 보험으로, 글로벌 최상위 수준의 재무 체력을 확보해 장기 성장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밸류에이션 재평가입니다.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핵심 메모리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주가수익비율(PER)은 미국 경쟁사인 마이크론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입니다. 같은 산업, 비슷한 실적에도 한국 증시에 상장됐다는 이유로 낮은 평가를 받는 구조인데요. 미국 시장에 직접 진입하면 글로벌 투자자 기반이 확대되고 자연스럽게 기업가치 재평가가 가능하다는 기대가 나옵니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마이크론이 멀티플(주가 배수)을 더 잘 받고 있는 이유가 혹시나 상장된 국가 때문이라면 미국에 SK하이닉스가 상장됐을 때 밸류에이션 갭을 줄이거나 더 잘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며 "ADR이 상장되면 SK하이닉스의 멀티플이 프리미엄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번 상장은 구조적으로 논란을 안고 있는데요. 핵심 쟁점은 '신주 발행'입니다. 새로운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경우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가 희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투자자들은 "현금이 충분한 상황에서 굳이 신주 발행이 필요하냐"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이미 30조원 이상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향후에도 막대한 잉여현금흐름 창출이 예상된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됩니다.
특히 최근 자사주 소각 이후 신주 발행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시장에서는 정책 일관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과거 ADR을 발행한 TSMC와 SK텔레콤(SKT)이 기존 주식을 활용한 구주로 상장했다는 것과 비교되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SK하이닉스의 ADR 발행은 찬성하지만 잉여현금흐름이 넘치는데 기존주주의 지분이 희석되는 신주 발행 방식은 반대"라며 "ADR 상장에 앞서 근본적인 거버넌스 개선이 전제돼야 주식 재평가 작업도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