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초대석-전병서] 다윗의 돌팔매, 호르무즈의 교훈

입력 2026-04-13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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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싸움은 시작하면 끝내야 한다. 끝내지 못하면 진 것이다. 골리앗이 다윗에게 무릎 꿇은 것은 힘의 부족이 아니라 지혜의 부재였다. 트럼프는 '세계 최강'을 자처하며 이란전쟁을 시작했지만, 호르무즈 해협 하나에 쩔쩔매고 있다. 전쟁은 시작하는 자가 주도권을 쥐지만, 끝내지 못하면 역전된다.

시간·선거·물가, 세 개의 초읽기에 동시에 몰린 강자 미국은 약자에게도 당한다. 미국이 F-35와 핵항모를 앞세워도 호르무즈 28km 수로 하나를 돌파하지 못하는 이유다. 제국은 힘으로 전쟁을 시작하지만, 전략이 없으면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란전쟁이 한국에 던지는 교훈은 다섯 개의 날카로운 화살이다.

첫째, 온리원(Only One)이 넘버원을 이긴다. 이란은 군사력으로 미국의 상대가 못 된다. 그러나 호르무즈라는 '온리원'을 쥐고 있다. 세계 원유의 20%, LNG의 30%가 이 28km 수로를 통과한다. 핵항모 열한 척을 가진 미국도 이 병목 하나 앞에서 셈법이 흔들린다.

한국의 온리원은 무엇인가. HBM 반도체·조선·원전이다. 하이닉스와 삼성의 HBM 없이는 엔비디아도, 미국 AI 패권도 없다. 강대국 틈 바구니에서 살아남는 길은 모든 분야의 1등이 아니라, 누구도 대체 못 할 단 하나를 갖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의 돌팔매이자 최강의 협상 카드다.

둘째, 전략적 모호성은 무능이 아니라 생존술이다. 중국은 총 한 발 쏘지 않고 이 전쟁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미국이 중동에서 소모되는 동안 위안화 석유결제를 확대하고, 이란산 원유를 할인가에 대량 확보하며, 글로벌 사우스의 맹주로 올라섰다. 갤럽 2026 조사에서 중국 리더십 신뢰도(36%)가 미국(31%)을 앞질렀다.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때, 가장 늦게 선택하는 나라가 가장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다. 전략적 모호성은 비겁함이 아니라 한국형 지정학 생존술이다.

셋째, 에너지는 외교가 아니라 안보다. 한국 원유의 70% 이상이 호르무즈를 통과한다. 이란이 해협을 석 달만 봉쇄해도 한국 경제는 산소호흡기를 달게 된다. 트럼프는 이미 세 장의 청구서를 내밀었다. 방위비 분담, 무역 관세, 호르무즈 호위 분담이 그것이다. 군함을 보내면 한반도 방위 공백을 노린 북한의 도발을 자극하고, 안 보내면 동맹 의무를 따지는 워싱턴을 자극한다. 이것이 한국판 안보 딜레마다.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와 원전 확대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다.

넷째, 북한은 이란의 교과서를 읽고 있다. 이란이 핵 개발을 협상 카드로 활용하며 20년을 버텼듯 북한은 이란 전쟁을 교과서 삼아 핵·미사일을 더욱 단단히 쥘 것이다. 미국이 이란과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은 이란이 강해서가 아니라 호르무즈라는 억지력 때문이다. 평양은 지금 비핵화 협상의 몸값을 더 높이 쌓고 있다. 한국에는 북한의 '협상용 핵'과 '전술용 핵'을 구분하는 정교한 눈이 필요하다.

다섯째, 초읽기에 몰린 강자를 상대할 때는 서두르지 마라. 트럼프에겐 지금 세 개의 시계가 동시에 돌아간다. 중간선거 시계, 물가 시계, 전쟁권한법 60일 시계(4월 28일 만료)다. 버티면 양보하고, 양보하면 또 요구하는 TACO(Trump Always Caves Out) 패턴은 이미 입증됐다. 방위비·관세·호르무즈 협상에서 한국이 배울 교훈이 바로 이것이다. 협상은 상대의 초읽기를 읽는 게임이다. 서두르는 쪽이 진다. 한국은 지금 서두를 이유가 없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은 더 큰 돌을 들어서가 아니었다. 골리앗이 무거운 갑옷을 믿고 방심하고 있을 때, 다윗은 이미 세 번째 돌을 겨누고 있었다. 전쟁의 승패는 개전 첫날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결정된다. 이란은 미국에 무릎 꿇지 않았다. 호르무즈를 쥔 채 협상 테이블로 미국을 끌어냈다. 그것이 진짜 승리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반도체·에너지 독립·전략적 인내 이 세 개의 돌팔매를 손에 쥔 나라는 강대국의 압박 앞에서도 쉽게 무릎 꿇지 않는다. 호르무즈 해협이 세상에 가르쳐준 것은 전략의 우위다. 힘이 아닌 지혜로 싸우는 나라만이 강한 나라와 싸움을 끝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