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돈을 푼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화가 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돈을 받고 싶지 않다. 당장 몇십만 원이 들어오는 것이 기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드는 생각은 하나다. "이 돈, 결국 누가 갚는 걸까"
요즘 환율은 1500원을 훌쩍 넘었고, 곧 1600원 이야기도 나온다. 이 숫자는 단순한 경제 뉴스가 아니다. 이미 우리의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다. 남편이 해외출장을 가면 예전처럼 돈을 쓰지 못한다고 한다. 똑같은 커피를 사도, 같은 식사를 해도 머릿속으로 계속 원화를 계산하게 된다고 한다. 이건 절약의 문제가 아니다. 돈의 가치가 줄어들었다는 감각, 그 불안이 먼저 몸에 반응하는 것이다.
환율이 오른다는 것은 같은 월급을 받아도 실제로는 더 가난해지는 것과 같다. 장을 보며 느껴지는 물가와 흔들리는 자산, 줄어드는 체감 소득까지, 경제는 이미 우리의 삶이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다시 지원금을 풀겠다고 한다. 고유가와 물가 상승으로 힘든 사람들을 돕겠다는 명분이다. 그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 번쯤은 물어야 한다. 이 지원금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지, 아니면 잠시 덮어두는 것인지.
경제는 결국 시간의 문제다. 오늘의 선택은 내일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지금 쓰는 돈은 언젠가 반드시 채워져야 한다. 세금이든, 미래 세대의 부담이든, 혹은 보이지 않는 방식이든. 결국 우리는 지금의 편안함을 위해 미래의 시간을 끌어다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요즘은 이런 장면도 낯설지 않다. 대구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연주자들이 큰 홀에서 공연을 열어도, 공연을 며칠 앞두고 좌석이 많이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일부 스타 연주자의 공연은 여전히 빠르게 매진된다. 하지만 그 외의 많은 공연들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관객이 줄어들고 있다.
지금 사람들은 무엇을 좋아하느냐보다 "지금 돈을 써도 되는가"를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가장 먼저 미뤄지는 것이 바로 문화다. 지갑이 닫히는 순간, 예술은 가장 먼저 멀어진다.
이 변화는 관객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요즘은 지역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예전처럼 사비를 들여 독주회를 여는 경우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한 번의 무대를 올리기 위해서는 대관, 연주자, 홍보 등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하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그 부담은 더 크게 느껴진다. 결국 무대는 줄어들고, 연주는 기회가 아니라 감수해야 할 위험이 되어간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얼마를 나눠줄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람들은 숫자보다 감정으로 움직인다. "지금은 쓰면 안 될 것 같다"는 이 감정이 퍼지는 순간, 경제는 빠르게 식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
나는 묻고 싶다. 우리는 정말 이렇게 계속 돈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지원금을 거부할 수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받지 않아도 되는 나라, 받지 않아도 괜찮은 경제.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몇십만 원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방향과 믿을 수 있는 내일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