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Busan is good은 좋은 슬로건일까?

입력 2026-04-03 09:21:31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부산역에 도착하면 사람들을 마중 나온 문장을 만날 수 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제공
부산역에 도착하면 사람들을 마중 나온 문장을 만날 수 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제공

분지인 대구에 있다가 부산역에 도착하면 그냥 그것 자체로 행복했다.

대구에서 맡을 수 없는 바다 바람 냄새가 가슴을 후벼 파고 나간다. 그럴 때면 내가 일을 하러 온 것인지 여행을 온 것인지 착각이 들곤 한다.

그런 행복도 잠깐이다. 부산역 앞을 나서면 이내 부산을 대표하는 문장과 마주친다.

'Busan is good.'

부산의 도시 브랜드 슬로건이다. 이 문장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내가 카피라이터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슬로건이 나오게 되었을까?''

광고주를 만나러 가는 길에도 이런 의문이 나를 떠나지 않았다. 시와 함께 일해본 경험으로 예상컨대 매우 어려운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도시 브랜드 슬로건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좋은 단어를 조합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저 좋은 말의 대잔치를 하는 작업이 아니다.

부산에 대해 전혀 관심 없는 사람에게 보여주어도

"그래? 부산이라는 도시에 한 번쯤 가보고 싶은걸?"

라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그런 감정을 자극시켜야 도시 브랜드 슬로건이라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Busan is good'은 그런 마음을 전혀 자극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내가 알고 있는 부산의 매력보다 훨씬 평가절하해 버린 것 같다.

해외의 사례를 한번 찾아보자.

미국 일리노이 주의 브랜드 슬로건은 다음과 같다.

"Illinois: A Million Miles from Monday"

(일리노이: 월요일로부터 100만 마일 떨어진 곳)

저 슬로건 속에는 예쁜 단어가 전혀 없다. 거리를 뜻하는 '밀리언 마일'과 시간을 뜻하는 '월요일'이라는 단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저 단어들을 조합하면 멋진 문장이 탄생한다. 사람들이 월요일을 힘들어하니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good'이나 'amazing', 'fantastic'과 같은 좋은 말의 대잔치가 없다.

그러나, 상상하게 한다.

'월요일로부터 100마일이 떨어진 곳은 얼마나 평화로울까?'

그저 머릿속에 그려보게 만든다.

그렇다면 부산시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아니, 전 세계적으로 가장 히트한 도시 브랜드 사례가 I love New York 아니오?"

1977년,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가 개발한 I love NY
1977년,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가 개발한 I love NY

그렇다. '아이 러브 뉴욕'이라는 슬로건은 매우 흔한 단어들의 조합이다.

그러나, 성공한 캠페인과 실패한 캠페인의 차이는 늘 한 끝 차이이다.

뉴욕시가 이 프로젝트를 의뢰한 사람은 '밀턴 글레이저'라는 디자이너였다. 그는 'I love New York'에서 love라는 단어 대신 하트를 사용해 평범한 문장을 살짝 비틀어 대중에게 공개했다.

당시로서는 시각언어로 텍스트를 대체한다는 것이 매우 예술적인 시도였다. 그럼에도, 나는 하트 대신 그저 텍스트로 '나는 뉴욕을 사랑해'라고 말했어도 훌륭한 슬로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때의 뉴욕은 높은 범죄율과 더러운 거리 이미지 때문에 매우 부정적인 도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욕시는 '뉴욕은 거대하다', '뉴욕은 풍요롭다'와 같은 스펙을 자랑하기 바빴다.

'아이 러브 뉴욕'은 달랐다. 상태가 아닌 감정을 이야기한 것이다.

자, 다시 Busan is good으로 돌아가보자.

하나의 아이디어가 세상의 빛을 보기 위해서는 광고주의 컨펌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정말 혁신적이고 남다른 아이디어가 통과되기 위해서는 광고주의 용기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지자체에서 그런 용기를 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주관성에 기댄 여론들을 감내하는 것이 부담된다. 그럴 때 가장 많이 채택되는 방법이 뜨거운 것도 아니고 차가운 것도 아닌 그저 미지근한 안을 발표하는 것이다.

싫지도 좋지도 않은 평범한 것을 선택하면 별 탈 없이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광고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광고인뿐 아니라 광고주의 역량도 상당히 중요하다.

내가 말하는 역량은 광고적인 기술이 아닌 용감하게 일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리더십을 뜻한다.

부산의 슬로건을 보면 그것이 부족한 듯싶다.

부산광역시의 관광 통계 자료에 따르면, 부산을 방문하는 인구가 하루 평균 27만 명 정도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부산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 흩어 저버리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물론 나의 의견 역시 주관성에 기댄 생각일 수 있다. 그러나, SNS에 올라오는 부산의 슬로건에 대한 아쉬운 의견들을 보면 나만의 생각은 아닌 듯하다.

부산의 매력을 한 껏 담아낸 강렬한 문장이 탄생할 날을 부산의 팬으로서 기다려 본다.

'기획력이 쑥 커집니다'의 저자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