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의 연극리뷰] 서울괴담 유영봉 연출의 대학로 쿼드극장 <힘든 귀가>"집이 있어도 돌아갈 곳 없는 잉여의 존재로 살아가는 세상 풍경"

입력 2026-04-03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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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서울괴담 , 코르코르디움.
서울괴담 , 코르코르디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선생님. 선생님의 미래를 말해드리겠습니다. 주역(周易)을 읽어드리죠. 공짜로. 제가 앞은 못 봐도 앞길은 잘 봅니다."(점술사) 5일까지 공연되고 있는 서울괴담, 유영봉 연출의 <힘든 귀가>는 서울역과 주변 도로가를 전전하며 국가와 삶으로부터 소외된 잉여 인간들의 '힘든 귀가' 풍경을 유영봉 연출의 장점으로 최대한 활용한 작품이다. 유영봉 연출의 장점은 <기이한 마을버스 여행–성북동>처럼 한국 사회의 기이한 현상을 병치시키며, 낯섦의 판타지와 풍자, 때로는 현실적인 전경과 인물들을 실제 공간, 마을 골목, 특정 장소에 배치하는 장소특정형 퍼포먼스에 강하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는 인형극적인 가면, 일본적인 괴귀한 탈의 활용, 음악과 악기, 생활 오브제, 몽환적이고 기이한 이미지 등이 극적인 환상과 현실의 거리를 객관화하는 장치로 연출화되기도 했다.

서울괴담 , 코르코르디움.
서울괴담 , 코르코르디움.

◇ 군대·노동·빈곤...집으로 귀가할 수 없는, 잉여의 존재들

유영봉 연출의 <힘든 귀가>(공동창작, 연출 유영봉, 기획 코르코르디움)는 "집이 있어도 갈 곳이 없으면 홈리스족이다"라는 극 중 대사처럼, 안전하게 사회로 귀가할 수 없는 홈리스 인생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자들을 서울역과 거리 공간을 무대 위로 전진시킨다. 군 입대 후 자살한 '위험남'은 여전히 별사탕을 들고 망자(亡者)가 되어 거리를 배회하며, 동·알루미늄·합금 주물 전문가인 군대 선임은 기술 노동자로 다리를 다친 뒤 일어설 수 없어도 산재 보상을 받지 못해 노숙남으로 살아가는 인생이다. 군에 보낸 아들을 잃은 할망은 폐지를 줍고 살고, 위험남의 옛 애인 '낙엽녀'는 방화범으로 전락한다. 청소남, 점술사, 사장남, 비둘남 등은 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밀려난 잉여의 존재들로 사회를 배회하며 살아 있어도 망자처럼 떠돌 뿐이다. 극중 인물의 캐릭터는 '사장남'을 제외하고는 사회로부터 격리되거나 버려진 채, 인생사 힘든 귀가를 할 수밖에 없는 돌아갈 곳 없는 사람들이다. 청소남에게 노숙남도, 위험남도 국가의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청소의 대상일 뿐이다.

무대는 중앙을 가로지르는 횡단형 구조와 양방향 객석으로 구성되어, 관객의 시선을 특정하게 고정시키기보다 분산시키며 인물들의 서사를 '듣고, 보여지는 장소'라기보다 '목격하는 공간'으로 구도화해 쿼드극장을 연출의 장점이 두드러질 수 있도록 공간화했다. 무대는 이삿짐을 쌓아둔 듯 의자, 탁자, 생활용품 등의 오브제가 노출되도록 했고, 무대 바닥 한 공간을 맨홀처럼 열어 죽어서도 세상을 배회하는 '위험남'의 존재를 형상화했다. 프롤로그부터 극 중 인물들은 무대와 객석 사이를 넘나들며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 거리를 배회하는 죽은 자들처럼 등장하고, 비닐의 활용은 이미지(꿈, 과거, 기억)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서울괴담 , 코르코르디움.
서울괴담 , 코르코르디움.

인형(탈) 오브제로 캐릭터를 형상화한 할망은 "내 옛날에는 이뻤어요. 팝송도 잘 하고… 피아노도 치고… 아코디언도 하고…"라며, 배우의 아코디언 연주를 통해 아들을 잃고 폐지를 줍고 살아가는 노년 빈곤의 인생이라기보다 누구나 그러한 과거와 삶을 살았던 존재였음을 환기한다. 이는 마치 기이한 마을버스를 타고 성북동 골목을 누비는 유영봉 연출 특유의 골목길 퍼포먼스처럼 확장된다. '비둘남'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는 괴기한 형체로 캐릭터화되는데, 인간의 불안과 빈곤, 사회로부터 소외된 존재로서 도시의 잉여이자 생존만 남은 인간의 변형된 얼굴이다.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 탈인형으로 등장했던 도도처럼, 인간의 얼굴 형태를 띠면서도 인간화되지 않은 반인반수(半人半獸)의 괴기한 형상이다. 이렇게 <힘든 귀가>는 극중 인물들의 서사를 구조적으로 묶기보다 인물별 에피소드를 병치해 각 인물의 삶을 개별적으로 부각시키면서도, 기억과 과거의 시간으로 파편화된 서사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사회의 주변부를 떠도는 잉여의 존재들로 형상화하는 점에서 극장이 도시 골목처럼 유영봉 연출 특유의 장점이 드러난다.

마지막 장면에서 '위험남'의 동상이 세워지는데, 군대와 사랑, 가난과 상실 속에서 사회와 집으로 귀가하지 못한 청년의 형상이라는 점과, 국가로부터 끝내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드러내면서 '정의'로운 사회가 무엇인지 묻는다는 점에서 메시지는 크다. 그러면서 <힘든 귀가>는 홈리스, 노년 빈곤층, 산재 노동자, 상실된 청년, 낙엽녀와 같은 존재들의 삶을 통해 사회 공동체 밖으로 밀려난 동시대 잉여적 존재들의 집단적 풍경을 형상화한다. 별사탕, 군복, 폐지, 인형탈, 막걸리, 동상과 같은 오브제 활용 또한 이들이 도시 속에서 잉여의 존재로 사라지는 과정을 감각적으로 직관하게 하는 연출적 아이디어로 기능한다.

아쉬운 점은 개인별 서사가 다소 길고, 기억과 시간들이 구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유영봉 연출만의 많은 장점들이 펼쳐져 있음에도 그것이 무대 위에서 온전히 조직되지 못하고, 쿼드 공간에서 퍼포먼스로만 머무는 인상을 남긴다. 또한 쿼드 공간에서 탈인형(할망)을 조종하는 배우의 얼굴을 노출하지 않았다면(도도처럼) 극으로 수렴되는 밀도는 더 높아졌을 것이다. <힘든 귀가>는 70분 동안 진행되며, 배우들(점술남·황기석, 청소남·김성환, 할망·오선아, 노숙남·길덕호, 낙엽녀·박미영, 위험남·김상우) 역시 유영봉 연출 스타일에 익숙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공연은 4월 5일(일)까지 대학로 쿼드극장에서 이어진다.

서울괴담 , 코르코르디움.
서울괴담 , 코르코르디움.

▲유영봉 연출의 <힘든 귀가>는.

서울괴담 단원들이 폐지 줍는 할머니를 인터뷰하면서 샴쌍둥이 할머니 캐릭터로 극화된 작품이다. 2011년 <두할–할망할망>으로 초연된 이후 성수아트홀(2013)에서 공연이 이어졌으며, 폐지와 고물을 줍고 살아가는 샴쌍둥이 할망을 통해 현대 도시 문제와 불평등한 사회 구조, 인간의 생존 문제를 배우들의 신체, 오브제, 가면을 활용해 표현해 왔다. 기이하게 변형된 캐릭터들이 유영봉 연출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러한 캐릭터와 오브제 활용을 통해 도시 구조와 사회 현상을 드러낸다. 2010년에 창단된 극단 서울괴담은 탈극장화 된 작업을 지속적으로 선보여 왔으며, 성북동 골목, 특정 도시, 거리와 같은 공간 자체가 유영봉 연출에게는 극장이다. 작품으로는 <두할–할망할망>, <기이한 마을버스 여행–성북동>, <기이한 마을 여행–삼청동>, <보이지 않는 도시> 등이 있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