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이희대] 산불은 꺼졌지만, 삶은 아직도 타고 있다

입력 2026-05-04 17:00:57 수정 2026-05-04 17:56:00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이희대 경북부 기자
이희대 경북부 기자

"산불은 모든 것을 태우지만, 그 자리에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까지는 태우지 못한다."

재난을 다룬 한 다큐멘터리에서 들었던 이 문장이 떠올랐다. 재난은 끝나는 순간보다 그 이후를 견디는 시간이 더 길고 더 고통스럽다는 의미다. 경북 북동부 산불 1년이 지났다. 불길은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산불이 휩쓸고 간 지 1년이 지난 현재 현장은 조용해졌지만 주민들의 삶은 여전히 그날에 머물러 있다. 피해 지역 주민들은 "불은 꺼졌는데 생활이 더 버겁다"는 한숨이 이어졌다.

복구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이재민들의 일상은 아직 임시라는 이름에 묶여 있다.

가장 직접적인 부담은 전기요금이다. 임시주택에서 생활하는 이재민들은 대부분 전기보일러에 의존한다. 산간 지역 특성상 겨울은 길고 추위는 매섭다. 전기 사용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요금이다. 한 달 전기요금이 50~70만, 심지어100만원까지 나오는 사례도 있다.

일부 지원금이 나오지만 40만원 수준에 그쳐 나머지 부담은 고스란히 주민 몫이다. 재산을 잃은 상황에서 매달 수십만원의 전기요금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또 다른 재난에 가깝다. "집도 잃었는데, 전기요금 폭탄까지 맞고 있다"는 주민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임시주택 구조에 대한 문제도 적지 않다. 단열이 충분하지 않아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고 냉난방 효율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반복된다. 결국 구조적 한계가 비용 부담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단순한 지원금 확대를 넘어 주거환경 자체를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보상 문제는 더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산불로 수십 년 키워온 소나무 숲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됐지만 임야에 대한 보상은 사실상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나무는 단순한 자산이 아니라 시간과 노동이 쌓인 결과물이다. 하지만 현행 보상 체계는 이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산주들은 "평생을 키운 산이 사라졌는데 돌아온 건 아무것도 없다"고 호소한다.

농업 피해 역시 마찬가지다. 농기계 9대가 불에 탔지만 실제 보상은 1대에 그친 사례도 있다. 농기계는 농민에게 생계 그 자체다. 기계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고 농사를 짓지 못하면 다시 일어설 기반도 사라진다. 부분 보상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생계 회복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벽이 되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재민들은 임시주택에서 1년 거주를 기본으로 최대 1년 연장까지 가능하도록 돼 있다. 이제 그 시한이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돌아갈 집은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고 새 집을 지을 여력도 부족하다. "내년에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질문이 현실이 됐다. 이는 주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자체가 풀어야 할 숙제가 되고 있다.

재난은 순간이지만 회복은 시간의 싸움이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버틸 수 있는 장치가 없다면 회복은 시작조차 어렵다. 전기요금 부담, 불완전한 보상, 임시주택의 구조적 한계, 그리고 다가오는 퇴거 시한까지 이 모든 문제는 하나로 연결돼 있다.

산불은 분명 꺼졌다. 하지만 이재민들의 삶은 아직 불길 속에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대책이다.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정책은 현실을 따라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복구 완료'라는 행정의 문장은 현장에서는 여전히 공허한 말로 남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