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김혜령] 다수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

입력 2026-03-27 13:39:32 수정 2026-03-27 13:5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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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나는 코로나19 백신을 맞지 않았다. 그 선택은 곧, 다수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 선택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다. 당시 정부는 백신이 안전하다고 했고 접종을 강하게 권했다. 사실상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조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나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맞지 않기로 했다.

그 이후의 생활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어딜 가든 접종 여부를 확인해야 했고, 식당이나 카페 같은 일상적인 공간에서도 제약이 있었다. 출근과 연주를 앞두고는 3일에 한 번씩 보건소를 찾아 항원검사를 받아야 했다. 몇 달 동안 이 과정을 반복했고, 검사 결과지를 들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 됐다.

같은 시기, 누군가는 출근을 위해 백신을 맞았고, 누군가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선택을 바꿨다.

각자의 상황과 판단 속에서 내린 선택이었고, 그 선택 자체를 옳고 그르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선택은 개인의 몫이었지만, 그 선택을 둘러싼 조건은 같지 않았다. 가장 부담이 컸던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동료들 사이에서도 나는 늘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안 맞았다고요? 왜요?" 이 질문은 단순한 궁금증이라기보다 판단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개인의 선택은 어디까지 존중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낯선 사람보다 가까운 관계에서 더 크게 다가왔다. 가족들도 대부분 백신을 맞았고,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감염병 상황에서 공동체의 안전이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 우리는 정말 선택을 하고 있었던 걸까. 형식적으로는 권고였지만, 실제로는 접종 여부에 따라 일상의 범위가 달라졌다. 선택하지 않을 경우 감수해야 하는 제약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렇다면 그만큼의 책임이 따라야 한다. 개인의 선택을 제한했다면, 정책의 근거와 과정은 더 엄격하게 관리되고 충분히 설명됐어야 한다.

최근 감사 결과를 보면 그 과정이 충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물 신고 처리와 대응 과정에서 투명성이 부족했고, 보다 신중한 조치가 필요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정책이 개인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면, 결과뿐 아니라 과정까지 설명할 책임이 있다.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왜 더 강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기준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책은 신뢰가 아니라 순응에 기반하게 된다.

우리는 언제부터 다수에 속하지 않는 사람을 설명이 필요한 존재로 보기 시작했을까. 위기 상황에서는 개인의 판단보다 집단의 흐름이 더 빠르게 작동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선택은 쉽게 배제된다. 그때의 문제는 선택 자체라기보다, 서로의 선택을 바라보는 방식에 더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그 선택이 옳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위기 속에서 쉽게 나뉜다. 다수와 소수, 옳고 그름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그 기준이 항상 충분히 검토된 결과였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백신을 맞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나를 설명해야 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