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대신 소송"… 학폭, '교육적 해결' 실종되고 '법정 싸움' 됐다

입력 2026-03-19 15:3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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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이력 수시 지원자 75%가 탈락… 학폭, 사활을 건 싸움 되다
SNS 1대1 대화 뒷담도 학폭으로… 경미한 사안에도 바로 변호사 찾아
학폭은 불이익, 소년범은 제외? 형평성 논란도
"징계 중심 한계… 관계회복 중심으로 전환해야"

챗GPT 생성 이미지.
챗GPT 생성 이미지.

"머리카락이 스쳤다는 이유로 학교폭력 가해자가 됐다."
"째려봤다는 이유로 신고를 당해 학폭위가 열렸다."

최근 대구 지역 맘카페에는 이 같은 하소연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자녀가 억울하게 학교폭력 가해자로 몰렸다는 주장과 함께, "요즘은 먼저 신고하는 사람이 유리하다", "가해자가 피해자처럼 행동하며 먼저 신고해버리면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처럼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씁쓸한 글도 있었다.

2026학년도부터 모든 대입 전형에 학교폭력(학폭) 조치 사항을 의무 반영하도록 제도가 바뀌면서 학폭 문제가 점점 '교육의 영역'을 벗어나 '법정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원행 학폭 사건 급증… 경미한 사안도 법적 대응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2026학년도 수시 전형 학폭 반영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국 170개 대학에서 학폭 이력이 있는 지원자(3천273건 중 2천460건)의 75.2%가 탈락했다. 정시에서도 전국 165개 대학에서 학폭 기록이 남은 지원자(593건 중 535건)의 90.2%가 불합격 처리됐다. 학폭 기록이 있으면 대학 진학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학폭은 학생 간 갈등을 넘어 '학부모 간 법적 분쟁'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인다.

학폭 조치는 1호(서면사과), 2호(접촉·협박·보복 금지), 3호(학교봉사), 4호(사회봉사), 5호(특별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 6호(출석정지), 7호(학급교체), 8호(전학), 9호(퇴학) 등 9단계로 구분된다.

대학에 따라 경미한 1~3호 조치까지 입시상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있어 학폭 사안이 교육적 해결이 아닌 '기록을 둘러싼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법원으로 가는 학폭 사건은 급증하고 있다. 19일 대구지방법원에 접수된 학폭 사건은 2022년 9건에서 2023년 11건, 2024년 17건으로 증가하더니, 2025년에는 45건으로 급증했다. 불과 3년 만에 약 5배 늘어난 셈이다.

법무법인 진수 나현경 학교폭력전문 변호사는 "과거에는 중대한 폭력 사건 위주였다면, 최근에는 이 사안이 과연 학폭에 해당하는지 자체를 다투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상대적으로 경미한 사례도 학폭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에 따라 분쟁 자체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어 "또한, 학생부 기재와 입시 영향이 커지면서 초기 대응부터 민감하게 접근하는 학부모들이 많아졌고, 학폭 처분에 대한 불복 소송도 확연히 증가하는 흐름"이라며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뿐 아니라 피해자 측에서도 '처분이 너무 약하다'며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뉘우침 사라진 교실… "솔직하면 오히려 손해"

현장에서는 현행 제도가 또 다른 왜곡을 낳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학교에선 학폭 사안을 심의할 때 객관적 증거 중심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보다 '법적 대응 전략'이 우선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처벌 중심의 시스템 속에서 자아성찰과 관계 회복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역 한 교육계 관계자 A씨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부인하는 학생은 오히려 처벌을 피하고, '그때 속상해서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라고 솔직하게 인정한 학생은 학폭 이력이 남는 구조"라며 "그러니 학부모 입장에선 자녀에게 '잘못을 했더라도 무조건 부인하라'고 가르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내봉사 10시간 처분을 받더라도 시간을 채우면 끝일 뿐,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은 강제되지 않는다. 서면사과 조치를 이행할 때도 사과문에 '미안' 딱 두 글자만 적어도 법적 절차상 문제가 없으면 교육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며 "진심 어린 사과나 관계 회복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또한, 학폭 조치는 입시에 반영되는 반면, 소년범 보호처분 등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아 진로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된다. 아울러 학폭 사안을 교육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사에 대한 제도적 지원과 안전망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안영빈 전교조 대구지부 정책실장은 "소년법상 보호처분이나 학교 내 다른 징계는 기록이 남지 않는 반면, 학교폭력 조치만 입시에 반영돼 불이익을 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어 "교사들이 학폭 사안을 교육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하려면 학폭 담당 교사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중재 과정에서 학부모 등으로부터 소송을 당할 위험이 있는 만큼 교사 보호 장치도 한층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징계 중심→관계 회복 패러다임 전환

교육당국 역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교육부는 초등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관계회복 숙려제'를 이달부터 도입했다. 이는 경미한 학폭 사안에 한해 심의 이전 단계에서 숙려 기간과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먼저 거치도록 하는 제도로, 기존 징계 중심에서 '학생 간 관계 회복'으로 학폭 대응 패러다임을 재편하겠다는 취지다.

대구시교육청도 지난 2019년부터 관계회복지원단을, 지난해부터 갈등조정지원단을 운영해 교육적 해결 강화에 힘쓰고 있다. 갈등조정지원단은 기존 남부지원청 소속 학교에서 올해 대구 전체 학교로 운영 대상을 확대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실제로 심의에 올라오는 사안 중 중대한 폭력은 소수에 불과하고, 상당수는 교육적으로 풀어야 할 갈등 수준"이라며 "처벌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관계 회복 중심의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