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이들에게 미안한 나라에서 아이들에게 당당한 나라로

입력 2026-04-07 15: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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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광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이사장

고진광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이사장
고진광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이사장

지난달 11일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제127회 동반성장포럼'에서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강연을 들었다. 주제는 '트럼프 2기 시대의 국제정치와 한국'이었다.

윤 전 장관은 "국제정치는 세계 정부가 없는 세계"라는 한 문장으로 국제정치의 본질을 설명했다. 국내 정치는 헌법과 법, 제도 속에서 움직이지만 국제사회에는 이를 강제할 '세계 정부'가 없다. 그래서 때로는 규범보다 힘이 먼저 작동하는 냉혹한 현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전략 경쟁, 민주주의 후퇴, 다자 협력 약화 등을 짚으며 "국제정치의 비극은 전쟁이라는 형태로 반복돼 왔다"고 말했다.

강연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최근 주한미군 사드(THAAD) 체계 일부가 경북 성주에서 중동으로 이동한 일이 떠올랐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중국의 강력한 경제 보복까지 감내하며 사드 배치를 선택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성주에 배치된 사드 일부가 '일시적 차출' 형식으로 중동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진행됐다는 점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반대 의견을 밝혔지만 현실적으로 막기 어려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처한 안보 현실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생각이 떠올라 나는 포럼에서 윤 전 장관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통령조차 막기 어려웠던 일이라면 우리 안보의 현실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의 답은 짧았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한마디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구조 속에서 작은 나라가 느끼는 무력감을 압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세대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물러설 것인가, 아니면 "그래서 우리가 달라지겠다"고 말할 것인가.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인추협)는 바로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인추협은 '사랑의 일기' 운동을 통해 아이들이 하루를 돌아보고 가족과 이웃, 사회와 세계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도록 돕고 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인간성과 양심을 지키는 힘은 결국 시민의식에서 나온다. 전쟁과 갈등의 시대일수록 중요한 것은 단지 강한 무기를 갖는 일이 아니라 어떤 시민을 길러내느냐이다. 평화와 인권, 공동체의 가치를 이해하고 책임질 줄 아는 시민이 많을수록 사회는 더 단단해진다.

사랑의 일기 아이들은 뉴스를 통해 전쟁과 갈등을 접하면서도 두려움과 분노만 배우지 않는다. 일기 속에서 평화의 소중함을 기록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약자의 고통과 지구촌 문제에 공감하는 마음을 키운다.

오늘의 국제정치가 힘과 이해관계의 무대라면 사랑의 일기장은 인간의 양심과 책임 의식을 키우는 조용한 교실이다. 여기서 자란 아이들이 훗날 외교관과 군인, 연구자와 시민으로 성장해 더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조금 더 인간다운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말에서 멈춰서서도 안 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