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26명으로 증원으로 법관 부족…하급심 약화 불 보듯 뻔해

입력 2026-03-11 16:3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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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정원, 1987년 개헌 이후 처음으로 늘어나…대법관 1인당 연간 3천478건 처리→상고심 적체 해소되나
대법관 증원 12명 규모…최대 100명 안팎의 부장판사급 법관들 재판연구관으로 차출 가능성
1·2심(사실심) 판사 부족으로 재판 지연 불가피…국민들의 권리 구제 어려워질 수도

28일 국회에서 열린 2월 임시국회 8차 본회의에서 전날 상정된 법원조직법 개정안(대법관 증원법)이 찬성 173인, 반대 73인, 기권 1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국회에서 열린 2월 임시국회 8차 본회의에서 전날 상정된 법원조직법 개정안(대법관 증원법)이 찬성 173인, 반대 73인, 기권 1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관 정원을 현행 14명에서 26명으로 확대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이어 국무회의 의결까지 통과하면서 사법부 전반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법안의 취지는 대법관 증원으로 상고심 사건 적체를 해소하는 데 있다지만, 한정된 법관 인력 구조를 고려하면 1·2심 사실심 위축은 '불 보듯 뻔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법관이 늘어나면 이를 보조할 재판연구관(법관)도 함께 확대되는데, 이들 상당수가 1·2심 법관에서 차출되는 구조여서 하급심 재판 인력난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 대법관 증원, 상고심 적체 해소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임시 국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대법관 증원법(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비롯해 사법개혁 3법을 원안 의결했다.

대법원 소속 법원행정처는 18일 열린 대법관 행정회의에서
대법원 소속 법원행정처는 18일 열린 대법관 행정회의에서 '국가적 중요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대법원. 연합뉴스

대법관 증원법의 핵심은 현재 14명인 대법관 정원을 26명으로 확대하는 데 있다. 법안 공포 2년 뒤부터 3년에 걸쳐 매년 4명씩 단계적으로 증원하는 방식이다.

대법관 정원은 1987년 개헌 이후 14명 체제로 유지돼 왔다. 2005년에는 법원행정처장을 대법관이 아닌 정무직 공무원이 맡도록 하면서 한때 13명으로 줄었지만, 2년 만에 다시 14명으로 조정된 뒤 현재까지 같은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대법관 증원은 상고심 적체 현상으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대법원에 따르면 2024년 상고심 본안사건(선거사건 제외) 처리 건수는 4만1천732건이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이 1인당 연간 3천478건을 처리하고 있는 셈이다.

대법관 1명이 연간 수천건의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구조가 이어지면서, 재판 당사자들은 재판 지연과 심리 부실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왔다.

특히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받은 당사자들의 불만이 많았다. 심리불속행이란 원심 판결에 대한 중대한 법령 위반 등 상고 이유가 없다고 판단되면 별도의 심리 없이 기각하는 제도다.

더불어민주당은 대법관 정원이 늘어 1인당 사건 부담이 줄어들 경우 심리불속행 기각 사례도 감소하고 상고심 처리 속도 역시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사실심 기능 약화 불가피해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가 28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 3법(법왜곡죄·재판소원제·대법관 증원)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가 28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 3법(법왜곡죄·재판소원제·대법관 증원)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대법관 증원으로 하급심 기능 약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법관이 늘어나면 이를 보조할 재판연구관도 함께 확대되는데, 상당수가 1·2심 판사 가운데서 차출되기 때문이다.

재판연구관은 대법관을 보좌해 원심의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관련된 법률과 대법원 판례를 조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원심 결론의 당부를 검토하는 특성상 재판 경험이 풍부한 부장판사급 법관들이 주로 보임된다.

현재 대법원에서 법관 신분의 재판연구관은 101명이다. 현직 판사들에 따르면 통상 대법관 1명당 7~8명의 재판연구관이 배치된다. 대법관 증원 규모가 12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대 100명 안팎의 법관이 재판연구관으로 추가 차출될 수 있다는 추산이 나온다.

문제는 전체 법관 약 3천300명 가운데 재판연구관 규모가 200여명으로 늘어날 경우 그만큼 하급심 재판 인력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1·2심은 사실관계를 심리해 판단하는 '사실심'이고, 대법원 상고심은 법 적용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법률심'이다. 법률심에 투입되는 인력이 늘어나면 국민 분쟁을 직접 심리하는 사실심 재판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것이다.

특히 사실심 재판의 처리 기간이 이미 길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민사본안 사건 제1심(합의) 처리 기간은 2014년 252일에서 2024년 437일로 약 73% 늘었다. 같은 기간 2심(고등법원) 처리 기간도 286일에서 313일로 증가했다.

이처럼 사건 처리 지연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사실심 법관이 재판연구관으로 보임될 경우, 하급심 판단에 대한 국민 신뢰가 추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판을 통한 권리 구제 기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대법관 증원에 따른 사실심 약화는 지난해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당시 토론에 나선 정지웅 변호사는 "대법관이 늘어나면 1·2심 경험을 쌓은 유능한 부장판사급 인력들이 대법원으로 대거 차출될 수밖에 없다"며 "1심 재판부는 경력이 짧은 판사들로 채워지면서 재판의 질이 떨어지고, 불복률 증가로 상고심 사건이 폭증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