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교수의 별별시선] 역사주의와 해석학을 빙자한 뜬금없는 이란 문화재 이야기

입력 2026-03-12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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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전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작가·전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세상에는 두 종류의 남자가 있다. 바보 자식과 나쁜 새끼. 여성은 어느 쪽을 골라도 꽝이다. 머리 나쁜 것을 참고 살거나 마음에 멍드는 것을 참고 살거나. 예제를 배로 늘려보자. 세상에는 네 종류의 남자가 있다. 말 많고 눈치 없는 놈, 말 많고 눈치 빠른 놈, 말 없고 눈치 없는 놈, 말 없고 눈치 빠른 놈. 이 중에서 여성이 가장 데리고 살기 좋은 놈은?

하나씩 보자. 말 없고 눈치 없는 놈, 속이 터진다. 아이고 답답해 가슴 치다가 빨리 가고 싶다면 최고의 선택이다. 말 없고 눈치 빠른 놈, 위험하다. 불륜 사건에서 살인은 보통 이런 놈들이 저지른다. 말 많고 눈치 없는 놈, 최악이다. 화병 나서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될 확률이 높다. 그나마 제일 나은 게 말 많고 눈치 빠른 놈이다. 실수도 잦지만 바로바로 말로 수습하는 스타일이어서 매번 그냥 넘어가게 된다. 단점은 이게 무한 반복된다는 것. 해서 가끔 원치 않았는데 여성이 득도하는 일이 생긴다.

◆집에 가져오고 싶었던 터키의 청동 대포들

해보시면 생각보다 유익한 말장난이다. 관점이 있고 대상이 있다는 역사학의 주요 방법론을 현실에서 구현했다고나 할까. 관점이 없으면 세상은 온통 잡다한 사실과 편린들이 모여 뭉개진 데칼코마니처럼 보일 것이다. 보고도 뭘 봤는지 모르는. 집 떠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쩌다 보니 10여 개국을 다녀왔다.

처음 동양 두세 개 나라를 돌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여기에 유럽 주요국을 서너 개 더하자 기준이 잡히기 시작했다. 양해 구하고 말장난 한 번만 더 해보자. 세상의 모든 나라는 네 종류다. 가봤고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 가봤고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나라, 안 가봤고 가 볼 생각 전혀 없는 나라, 안 가 봤지만 꼭 가보고 싶은 나라. 외교 문제 일으키기 싫어 가고 싶지 않은 두 나라는 생략한다.

가봤고 다시 가고 싶은 나라는 터키다. 프랑스든 독일이든 아무리 역사가 오래됐다 한들 결국 한 문명이다. 거기서 거기인 왕조들의 퇴적물은 금방 질린다. 터키는 서아시아 문명을 무찌른 그리스 문명을 로마 문명이 덮고 다시 그리스 문명이 솟아올라 이를 통제하는 가운데 최종적으로는 이슬람 문명이 상층부에 올려진 문명이다.

해서 길 다니다 보면 이게 대체 언제적 유물인지 추리가 불가능하다.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당연히 모른다. 확실한 것은 다른 나라에서라면 박물관으로 가야 할 물건들이 동네 공터에서 비를 맞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비에 젖는 청동 대포가 안쓰러워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우산을 씌어주고 있던 어느 동양 놈을 현지인들은 참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던 기억이다.

◆아랍을 문화적으로 정복했다고 믿는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들

가보지 않았지만 가보고 싶은 나라는 이란이다. 서양문명의 뿌리에 그리스와 로마가 있고 동양문명의 토대에 주나라와 한나라가 있다면 그 중간 지점인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에는 페르시아(이란)가 있다. 중원을 접수한 북방이민족들이 한나라가 쌓아놓은 문화에 좌절한 끝에 결국 한족 동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옛 페르시아 제국 자리를 차지한 거친 유목 민족들도 땅은 정복했지만 지배는 꿈도 못꿨다.

지배는 커녕 페르시아 관료들을 빼면 나라가 안 돌아갔다. 심지어 궁중 언어도 페르시아어였다. 그 문명의 뼈대가 보고 싶은 거다. 이 뼈대는 말 그대로 그냥 돌무더기일 가능성이 높다. 원래 돌무덤 보면서 심오하게 고개 끄덕이는 게 유적 구경이다. 그래도 로마 유적보다는 낫단다. 가시적인 볼거리가 있다는 얘기인데 그래서 전쟁의 장기화와 확대가 걱정이다.

헤이그 문화재보호협약(1954)은 문화유산 공격을 엄정하게 금지한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비일상적인 상황에서 그게 얼마나 지켜질까. 게다가 전쟁에서 상대방 국민의 저항 의지를 꺾는 순서가 생존권 파괴(집), 공동체 파괴 그리고 마지막이 정체성 파괴다. 문화적 유산 파괴의 목적은 고도의 심리전으로 "너희는 사라질 민족이다"라는 메시지다.

설마 미국이 그러겠냐고? 이란 반군과 쿠르드군이 합류한다며? 그래서 걱정이란 얘기다. 이란 문화재가 이들의 주요 고려 대상일 리가 없지 않은가. 의도치 않은 피해로 혹시 전쟁 전이면 볼 수 있었는데 터만 남은 유적이 되어 버린다면 참 많이 슬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