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정성태] 남길 것과 고칠 것

입력 2026-02-24 09:34:18 수정 2026-02-24 09:36:00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정성태 꾸꿈아트센터 대표

정성태 꾸꿈아트센터 대표
정성태 꾸꿈아트센터 대표

설 연휴가 끝났다. 차례를 마치고 세배를 나눈 뒤, 북적이던 거실이 고요해지고 나서야 생각이 정리됐다. 우리는 전통을 지키고 있는가, 아니면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변화를 미루고 있는가. 익숙함에 기대어 판단을 미뤄온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명절 연휴, 대구 동성로 반월당 지하철 계단에서 발걸음이 몇 차례 엇갈렸다. 사람들은 서로 비켜섰지만, 그 짧은 머뭇거림은 반복됐다. 우측통행이 원칙이 된 지 오래지만 몸은 여전히 주저했다. 한때 배웠던 좌측통행의 기억이 무의식처럼 발걸음을 이끌었다.

문제는 어느 쪽이 옳으냐가 아니다. 바뀐 제도가 생활 속으로 충분히 스며들지 못한 데 있다. 질서는 법으로 정해지지만 문화는 몸으로 완성된다. 명절처럼 사람이 몰리는 날이면 그 간극은 더욱 선명해진다. 사소한 동선의 혼란은 공동체가 규칙을 얼마나 생활화했는지를 드러낸다. 작은 불편을 어떻게 나누고 조율하느냐가 결국 사회의 품격을 결정짓는다.

명절의 풍경도 다르지 않다. 상차림과 설거지, 음식 준비와 뒷정리가 여전히 일부 구성원에게 집중된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역할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을 전통이라고 부르지만 그 안에는 조선의 가부장 문화와 근대 이후 굳어진 가족 규범이 여전히 남아 있다. 오래된 관습이 모두 전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바뀌지 않는 관습은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다시 살펴볼 대상이다.

그렇다고 전통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전통은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존중과 답습은 다르다. 전통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형식뿐만 아니라 그 의미도 함께 이어져야 한다. 세배의 절차보다 중요한 것은 존중의 마음이며 차례의 순서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나누는 시간이다. 전통은 공동체가 지금도 동의하는 약속이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질서를 중시하는 사회라 말한다. 작은 질서부터 더욱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우측통행을 몸으로 익히고 명절 노동을 자연스럽게 나누는 것은 사소해 보이지만 공동체의 태도를 드러낸다. 방향은 바뀌었는데 발걸음이 여전히 머뭇거리고, 시대는 달라졌는데 역할이 그대로라면 우리는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관습을 반복하고 있을 수 있다.

설은 지나갔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고칠 것인가. 전통은 저절로 이어지지 않는다. 자신을 반문하는 공동체만이 전통을 새롭게 써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명절과 일상은 조금씩 방향을 바로잡을 것이다. 전통은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