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점골목 '문화 콘텐츠', 불로화훼단지 '공간 개선', 율하아트거리 '상인 조직화'
온라인 소비 확산과 상권 노후화로 침체됐던 대구의 골목상권들이 '공간 개선'과 '문화 콘텐츠', '상인 조직화'를 결합한 정책을 계기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단순한 환경 정비를 넘어 상권의 정체성을 재정의하고, 외부 유동인구를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골목의 역할 자체를 바꾸고 있다. 대구시는 공간·콘텐츠·조직화를 축으로 한 단계별 지원을 통해 골목상권의 자생력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지역 상권 모델을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중구 남산동악기점골목
대구 중구 남산동악기점골목은 대구에서 유일하게 악기 판매점과 음악 관련 업종이 밀집한 상권이다. 1980년대부터 명덕네거리를 중심으로 클래식 악기와 음향기기, 음악 학원 등이 모여들며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온라인 상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상권은 점차 침체됐다.
최근 이 골목은 대구시와 대구전통시장진흥재단이 주관하는 골목경제권 조성사업을 통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상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 조형물을 설치하고, 골목 담장에는 벽화 디자인을 적용했다. 보행로에는 공공디자인을 도입해 문화·역사적 이미지를 강화했다.
지난해에는 지역 밴드와 시민 참여를 중심으로 한 '남산썸머사운드' 축제가 처음 열렸다. 해당 행사에는 2천700여 명의 관람객이 참여해 골목 전반에 유동인구를 유입시키는 계기가 됐다. 공간 개선과 문화 행사가 결합되며 남산동악기점골목만의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명호(61) 남산동악기점골목 상인회장은 "작년 행사를 하면서 대구에도 악기 골목이 있다는 걸 알리는 계기가 됐다"며 "골목 분위기가 달라지니까 상인들도 다시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지난 2021년 전국 최초로 골목경제권 조성사업을 시행한 대구시는 5년간 50개 골목상권을 신규로 발굴·육성했다. 지난해에는 상인동 먹자골목과 교동연합골목, 동성로 로데오골목 등 5개 골목상권이 새롭게 조직됐다. 골목경제권 조성사업은 개별 점포 지원에 머물렀던 기존 상권 정책에서 벗어나, 골목 단위의 브랜드 구축과 공동 기획을 핵심 전략으로 삼았다.
이 사업을 통해 브랜드 정체성과 경쟁력을 갖춘 골목상권은 중소벤처기업부의 '골목형 상점가' 지원사업에 도전할 수 있다. 골목형 상점가로 지정되면 온누리상품권 사용이 가능해지고, 정부 지원 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다. 사업 추진 전인 2020년 3곳에 불과했던 지역 골목형 상점가는 현재 53곳으로 늘어나 약 18배 증가했다.
◆동구 불로화훼단지·율하아트거리
골목경제권 조성사업은 골목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브랜드 확장의 계기로도 활용되고 있다. 동구 불로화훼단지는 80개가 넘는 화훼·원예 업종이 밀집한 상권이다. 화훼 소비 위축과 온라인 중심 소비 확산으로 상권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2024년 골목상권 활력지원사업을 통해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며 외부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혔다. 3일간 진행된 동성로 팝업스토어에는 하루 평균 1천500명이 방문해 상권 홍보 효과를 냈다. 지난해 이틀간 운영된 팝업스토어에는 관람객 8천100여 명이 방문했고, 체험프로그램에는 3천여 명이 참여했다. 통합 브랜드 구축과 상권 상징 조형물 설치, 팝업스토어 운영 등이 병행되며 불로화훼단지의 인지도를 도심 전반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성해(68) 불로화훼단지연합회장은 "동성로 팝업스토어를 통해 젊은 층이 화훼에 관심을 가진다는 가능성은 분명히 확인했다"며 "이제는 온라인과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상권 자체를 바꾸는 단계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AI와 IT 기술을 화훼 산업에 접목한 스마트 화훼단지로의 전환을 중장기 목표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골목경제권 조성사업은 상인들 간의 끈끈한 유대감을 조성하는 데에도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공방과 에스테틱 등 소규모 업종 30여 곳이 밀집한 동구 율하아트거리는 이번 골목경제권 사업을 계기로 '각자 장사하던 골목'에서 '함께 움직이는 상권'으로 성격이 달라졌다.
지난해 2월 열린 현대시티아울렛 팝업스토어와 같은 해 10월에 열린 율하아트거리 축제 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협업하고, 매장 밖으로 나와 서로의 상품과 공간을 공유하는 경험을 쌓았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상권 내 업종 특성을 반영한 체험형 콘텐츠를 통해 주민 참여를 이끌어냈고 이는 상권의 성격을 보다 분명히 드러내는 계기로 작용했다.
김주연(51) 상인회장은 "예전에는 상인회라고 하면 부담부터 느꼈지만, 직접 함께 해보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며 "혼자 장사하던 골목이 이제는 서로 도와가며 움직이는 공동체가 됐다"고 말했다.
◆'K-대구 골목' 육성
대구시는 올해도 14억원을 투입해 'K-대구 골목' 육성에 나설 계획이다. 사업은 조직화-안정화-특성화의 3단계로 추진된다. 1단계 조직화 단계에서는 신규 골목상권 공동체 3개소를 발굴해 상인회 구성과 공동마케팅을 지원한다. 골목상권당 500만원씩 총 1천500만원의 시비가 투입돼 상권 형성을 위한 기초 기반을 마련한다.
2단계 안정화 단계에서는 회복지원과 활력지원 사업을 통해 본격적인 상권 경쟁력 강화에 나선다. 최대 1억원을 투입, 브랜드 개발·홍보·경영 컨설팅·시설물 설치·환경개선 등을 통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한다.
3단계 '특성화'는 민간 협력을 기반으로 자생력을 높이고 '로컬브랜드 K-골목' 육성에 주력한다. 대구의 역사와 문화를 결합한 관광형 핵심 상권 조성을 목표로, 상권당 1억5천만원을 지원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출 계획이다. 아울러 '대구로페이 연계 소비촉진 행사'를 통해 시민과 관광객의 지역 소비를 유도하고 실질적인 매출 증대를 뒷받침할 예정이다.
대구 곳곳에서 나타나는 이 같은 변화는 골목상권이 단순한 소비 공간을 넘어 지역의 문화와 산업을 담아내는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기환 대구시 경제국장은 "이제 대구의 골목은 단순한 소비 공간을 넘어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기는 매력적인 문화공간이 되어야 한다"며 "지역의 골목상권이 각자의 색깔로 빛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개별 소상공인까지 아우르는 맞춤형 정책을 통해 골목상권을 지역 경제 회복의 든든한 마중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