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경 사회부 기자
중학교 시절, 겨울방학을 앞두고 열린 운동장 조회 시간이었다. 당시 담임 교사가 전교생이 보이는 조회대 옆 계단으로 불렀다. 추운 날씨로 교복 위에 점퍼를 입고 있었는데 복장을 지적하며 당장 벗으라는 것이었다. 지시에 따르긴 했지만 수치심, 황당함에 얼굴이 붉어졌던 기억이 난다. 교사 입장에선 복장 지도의 일환일 수 있겠으나, 다른 반 학생들도 점퍼를 입고 있었고 딱히 튀는 색깔도 아니었기에 그날의 고압적인 지도 방식이 지금도 납득이 가진 않는다. 어린 시절 강렬한 기억은 어른이 되어서도 약간의 상처로 남아있다.
지난해 5월 대구 한 초등학교에서 영양 교사가 몇몇 학생들에게 급식 잔반을 강제로 먹도록 지시해 논란이 되고 있다. 해당 교사는 학생들이 급식실에서 잔반 처리를 위해 식판 한곳에 모아둔 반찬을 직접 젓가락으로 건져준 뒤 먹도록 지시했다. 학생들은 교사와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려움, 수치심을 느끼며 해당 음식을 억지로 먹어야 했다. 이후 한 학생은 원인 불명의 복통으로 한 달여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로 인한 장염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학교와 교육 당국의 미온적인 대처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피해 아동의 부모들이 또 다른 피해를 우려해 전교생 실태조사를 요구했지만 학교 측은 학교 이미지 훼손, 다른 학부모 민원 등을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지난달 학교 인근 아파트 입주자대표협의회에서 단체 민원을 제기했고 8개월이 지난 최근에서야 교육청 차원의 감사가 들어가며 전수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해당 사건이 보도되자 온라인에서는 찬반 의견이 분분했다. '지금이 굶고 사는 시대도 아닌데 못 먹겠다는 걸 굳이 먹여야 하냐' '본인이라면 잔반으로 모아둔 걸 먹을 수 있나' 등의 의견이 있는가 하면, '학생들이 오죽 안 먹고 꾀부렸으면 그랬겠냐' '편식 지도는 영양 교사의 의무 중 하나'라며 영양 교사를 두둔하는 의견도 나온다. 학교 측은 "해당 교사가 생활 지도를 하려는 교육적 열정이 과해 빚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학교 급식실 잔반 강요 사건은 잊을 만하면 한번씩 불거진다. 2024년 창원, 2021년 경북, 2009년 충북의 한 초교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악의적 의도가 아니라면, 교사의 적절한 급식 지도와 학생의 자율성 사이의 기준이 모호한 점이 원인일 수 있다. 학생의 식습관을 개선하고, 잔반을 줄이기 위한 영양 교사 나름의 고충도 있을 것이다. 다만 지도 과정에서 학생들이 수치심, 불쾌감을 느낀다면, 그것이 진정 학생을 위한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심지어 그러한 기억이 특정 음식에 대한 트라우마로 이어진다면 더더욱 말이다.
2024년 경기 지역 초교에서 식판 스캐너를 이용한 '잔반 줄이기 챌린지'를 진행한 적이 있다. 급식실에 설치된 스캐너가 급식 전후 식판을 스캔해 학생이 남긴 음식 종류와 중량을 읽어내는 방식이다. 식판을 비운 정도에 따라 모니터에 점수가 표시되고 귀여운 동물 그림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게임을 하듯 재미와 성취감을 느끼며 잔반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열흘 동안 챌린지를 진행한 결과, 학생 1명당 잔반이 9%가량 줄어들었다. 급식 지도는 무조건 잔반이 없도록 하라고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니다. 먹지 않는 학생을 탓하기 이전에 식습관 개선을 위한 다양한 방안에 대한 고민이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