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강우 시인·소설가
그 사람은 나무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나무를 가꾸는 건 자신의 면목을 세우는 일이라 여겼습니다. 나무는 올봄에도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그 사람은 친구들을 불러 나무를 보여 주었습니다.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칭찬했습니다.
아름답다. 근사하다. 기품이 있다. 수려하다. 나무에 대한 소감이 이어졌습니다. 그때 한 친구가 나무의 키가 좀 더 크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 사람은 나무를 쳐다보았습니다. 나무의 키가 커지면 꽃과 열매도 훨씬 많아질 거라고 친구 하나가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곤 친구들에게 열매를 건넸습니다. 다들 맛있다고 말했습니다.
"나무의 약속은 언제나 달콤하지." 그 사람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무의 열매를 나무의 약속으로 치환한 재치가 훌륭하다고 친구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습니다.
늦가을. 나뭇잎도 열매도 다 떨어진 어느 날, 그 사람은 옆으로 뻗은 나뭇가지를 사정없이 잘랐습니다. 나무가 부르르 떨며 뭐라고 했지만 그 사람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 사람은 일고여덟 살 이후 본격적으로 인간의 언어를 습득하면서 나무와의 대화에 소홀했습니다. 그 사람의 팔뚝이 나뭇가지보다 굵게 되었을 무렵엔 나무의 언어를 깡그리 잊어버렸습니다. 심지어 그 사람은 나무와 대화한 적이 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이듬해 봄, 다시 꽃이 피고 열매가 달렸습니다. 그 사람은 또 친구들을 불러 나무를 보여 주었습니다. 친구들은 키가 커진 나무가 근사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너희들 덕분이야. 그 사람은 환하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습니다.
그해 여름, 나무는 벼락을 맞고 커다란 가지 두 개가 부러졌습니다. 나무는 균형을 잃고 삐딱해졌습니다. 친구들이 말했습니다. "보기 싫다. 뽑고 새 나무를 심어. 정원 분위기가 을씨년스러워."
그때 나무가 있는 힘을 다해 외쳤습니다. "벼락은 내 약속이 아니었어." 인간의 귀엔 그 말이 바람소리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채 익기도 전에 떨어진 열매를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이었다고 하는군."
친구들은 볼품없는 열매를 나무의 공약(空約)으로 바꾼 그 사람의 순발력을 칭찬했습니다. 가만히 지켜보던 나무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인간들과의 대화가 가능했다면 일일이 해명하고 바로잡느라 열매를 키울 시간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날 밤, 나무는 착한 봄바람의 도움을 받아 계절과 한 약속을 지켰습니다. 부러진 가지에서 움을 틔운 것입니다. 나무는 인간과 약속한 적이 없습니다. 꽃이나 열매는 계절의 낙관(落款)이며 벌과 나비는 자연영농조합에서 보낸 성실한 직원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