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접고 원전으로…이재명 정부 정책 유턴의 배경은?

입력 2026-01-26 14:5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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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반도체 시대 전력 현실 직면…文정부 탈원전 한계 인정
원전 밀집 TK·PK서 찬성 압도…'현장 여론'이 정책 전환 밀어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26일 정부세종청사 기후부 기자실에서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추진 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26일 정부세종청사 기후부 기자실에서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추진 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가 신규 대형 원자력발전소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 건설을 포함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을 원안대로 추진하기로 하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공식화됐던 탈원전 정책이 사실상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7년 탈원전 선언 이후 8년 7개월 만의 방향 전환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급변한 산업 구조와 전력 수급 여건이 정책 유턴의 배경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26일 정부 세종청사 브리핑에서 "제11차 전기본에 정해진 신규 원전 건설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이번 결정의 가장 직접적인 요인으로 전력 수요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꼽는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데이터센터, 전기차 등 전력 다소비 산업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안정적 전력 공급이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AI와 반도체 공정은 전력 사용량보다도 공급의 연속성과 안정성이 핵심"이라며 "출력 변동성이 큰 태양광·풍력 중심의 재생에너지만으로 24시간 가동이 필요한 첨단 산업을 뒷받침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한 에너지저장장치(ESS) 역시 비용 부담과 화재 위험 등 현실적 제약을 동시에 안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한국의 지리적 조건도 정책 판단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꼽힌다. 김 장관은 브리핑에서 한국을 "에너지 섬나라"라고 표현하며, 외국 전력망과 연결되지 않은 구조적 한계를 언급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전력 수급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면 기저 전원으로서 원전의 역할을 다시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정부 내부와 정책 현장에서 확산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재인 정부 당시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전제 자체가 달라졌다는 점도 정부는 강조하고 있다. 김 장관은 "당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로, 전 세계가 원전 위험성에 매우 예민하던 시기의 연장선에 있었다"며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를 그린수소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심화되고, 수소의 생산 비용이 기대만큼 낮아지지 않으면서 당시의 가정이 더 이상 성립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김 장관은 "그 시기와 지금의 조건은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국내 여론의 변화도 정책 전환에 힘을 실었다. 기후부가 22일 공개한 여론조사 세부 결과를 보면 신규 원전 건설 찬성 비율은 원전 밀집 지역에서 오히려 더 높게 나타났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구경북(TK)의 찬성률은 75.9%, 부산·경남·울산(PK)은 72.1%로 전국 평균(69.6%)을 한참 웃돌았다. 월성(경북 경주)·한울(경북 울진)·고리(부산 기장) 등 기존 원전과 인접한 지역일수록 반대 비율은 낮고 찬성 여론이 강했다. TK 지역의 반대 비율은 16.5%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정치 성향별로도 보수층은 물론 중도층에서 찬성이 압도적이었고, 진보층에서도 과반이 원전 필요성에 동의했다. 같은 조사에서 '원전이 안전하다'는 응답이 60%를 넘었고, TK 지역의 안전 인식은 전국 최고 수준으로 나타났다. '국민 주권'을 강조해 온 이재명 정부로서는 이 같은 여론 흐름을 외면하기 어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이번 결정에 앞서 두 차례 정책 토론회와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 의견을 수렴했다고 설명하지만 정책 결정이 늦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11차 전기본 기준으로 대형 원전 1기 건설에는 약 13년 11개월이 걸린다. 그동안 공론화와 재검토가 반복되면서 부지 공모조차 중단됐던 점을 고려하면 지금 즉시 절차를 재개해도 2037·2038년 준공 목표는 빠듯한 일정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에너지 정책을 둘러싼 논의가 길어지면서 정책 결정과 실행이 늦어졌다는 책임론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