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교수의 별별시선] 우리는 모두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

입력 2026-01-29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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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전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작가·전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면서 아담이 하와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는 지금 격변의 시대를 살고 있소." 노동과 출산이라는 짐을 안았지만, 큰 애가 작은 애를 잡는 불상사가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대체로 순항이었다. 그 뒤로도 인류에게는 몇 차례 분기점이라고 부를만한 사건들이 있었다.

자동차, 핵무기, 인터넷 뭐 이런 것들인데 이제 그 셋을 다 합친 것보다 더 격동의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인공지능이다. 혹자는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위기이고 누군가에게는 기회라고. 내 생각은 다르다. 다 위기다. 그저 개개인에 따라 치명적 위기냐 감내할 만한 위기냐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슬프게도 내게는 전자가 될 것 같은 '글짓기'의 현재 상황은 이렇다.

칸트와 헤겔과 투키디데스와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이용해 경구를 만들어달라고 했더니 1초 만에 이런 글이 나왔다. "역사는 이성에 의해 전진하지만 국가는 두려움에 의해 움직인다. 그리고 국가들의 긴장 속에서 도덕은 오직 승자들만이 말할 수 있는 사치품이 된다." 나도 쓸 수는 있다(허세 절대 아님).

그러나 한 시간은 조합하고 다듬어야 한다. 답을 내놓은 지피티가 물었다. 원하신다면 이 문장을 철학적이나 문학적으로 만들어 드릴까요? 아니, 됐어, 거절했다. 보기 겁났다.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오갔다. 나는 이제 생각만하고 글은 얘가 쓰면 되겠네? 그리고 이런 주문 나만 할 수 있는 거 아니니 칼럼 쓰는 직업도 이제는 끝인가? 결론을 내는 데는 나도 지피티만큼 빨랐다.

나는 이제 직업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실은 이런 주문 처음 해본 거 아니다. 이러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신문 사설 형식으로 원고지 5.5매 분량을 말하는 순간 바로 나온다. 심지어 00일보 스타일로 혹은 월간지 00같은 분위기로 주문을 토핑해도 역시 OK다. 더 중요한 건 발전 속도다. 6개월이면 새 버전이 출시된다. 그래서 지금 현재 쓰고 있는 AI는 '최악의 AI'라는 말까지 나온다. 우리는 정말로 미친 격랑의 시대를 살고 있다.

혹시 1%라도 생존 가능성이 있을까. 지피티에게 물었다. AI가 아무리 똑똑해도 인간처럼, 특히 나처럼 헛소리를 당당하게 늘어놓지는 못하잖아? 기꺼이 동의하면서 그걸로 짧은 에세이까지 만들어줬다. AI가 완벽해질 때까지 계속 그러고 사는 게 살아남는 법이라는 결론이었다.

시한부지만 그게 어디냐 싶었다. 그런데 이 불안감은 뭐지. 다시 물어봤다. 진짜로 헛소리를 늘어놓는 게 불가능해? 얘는 거짓말을 못한다. 된단다. 이미 상당히 하고 있단다. 이어서 위로랍시고 인간만의 글쓰기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아,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차라리 위로가 되는 건 다른 분야도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디오 킬드 라디오 스타라는 노래도 있었지만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대부분 예술에 치명상을 안긴다. 인공지능은 아니지만 기술이 처음 예술을 죽인 게 1839년이다. 사진이 등장했고 사물 재현 회화가 죽었다. 사진이 강탈한 영역을 포기하고 옆으로 이동한 인상주의가 사물을 그리는 대신 사물이 '보이는 순간'을 그리면서 미술은 겨우 연명할 수 있었다.

두 세기 가까이 흐른 후 이번에는 음악이 타깃이 됐다. 2022년은 음악의 1839년이었다. 음악 생성모델이 등장했고 작곡, 편곡, 연주가 인간 없이 가능해졌다. 2024년에는 특정 가수의 음색을 학습한 AI 보컬이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다. 이거 전부 말로 하는 거다. 음악 이론 몰라도, 악기 못 만져도 주문하면 그냥 나온다. 소설과 디자인? 그건 이미 사망 신고서에 잉크 마른지 오래다.

솔직히 두렵다. 인공지능이 만들어갈 새로운 세상이. 쓰기 나름이라는 둥, 혹 미술을 예로 들자면 '사진은 회화를 죽이지 않았다. 대신 회화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따위의 말로 위안을 삼지 말자. 초라함만 늘어난다. 새해 첫 달부터 불길한 글 읽게 만들어 드려서 죄송하다. 그래도 배에 힘주고 맞으면 덜 아프다. 전 종목 각자도생의 시대, 모쪼록 생존하시길.